엄마들의 매일을 응원합니다.

페이스북 코리아 상무  서은아




우리의 24시간은 너무 짧습니다. 허둥대는 하루를 보내고 나면 육아라는 긴 터널 안에 갇혀버린 것 같다는 자괴감이 들 때가 많습니다. 빛나는 자아를 찾을 수 있는 날은 그 언제일까 싶어 가슴이 철렁하는데도 휘몰아치는 하루는 맥없이 사라져 버립니다. 언젠가 우리도 이 깊은 터널을 지나 빛나는 자아를 마주한 채 스스로의 어깨를 두드리는 날이 오긴 하는 걸까요?


그 답을 구하고 싶어서 조금 먼저 그 터널을 지나온 14살 서현이의 엄마이자, 일상 기록가이자, 브랜드 탐험가이자, 취미 부자인 페이스북코리아의 글로벌비즈니스 마케팅팀 서은아 상무(@memyselfolive)를 만났습니다. 


그녀 역시 많은 시간 무너져 내렸었다고 했습니다. 그 무너짐의 반복이 지금 그녀를 단단한 시간운영자가 되게 했다고 했습니다. 인터뷰 내내 말과 말 사이에 넘쳐나는 진심과 위로. 행간마다 담긴 그 뜨거운 응원의 마음을 고스란히 전하고 싶어 다소 긴 글이 될 거 같네요. 역시 그녀는 우리의 응원대장인 게 틀림없습니다.


-자기 자신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먼저 저는 온갖 만물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책도 문구도 여행도 사람도 이야기도 정말 좋아하는 것이 많아요. 일한 지는 23년차가 되었는데요, 현재는 페이스북 글로벌 비즈니스 마케팅팀을 맡고 있어요. 세상 사람들이 가진 좋은 아이디어가 위대한 기회가 될 수 있도록 응원하는 일입니다. 크고 작은 비즈니스가 디지털 세상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특히 작은 비즈니스를 응원하는 업무를 좋아합니다. 그러다 보니 반짝이는 브랜드들을 발견하는 것이 저의 일 중 하나가 되었어요. 이를 위해 인스타그램을 정말 유심히 봅니다. ‘시간을 두고 유심히’요. 



- 자신을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는 어느 하루를 묘사해 주시겠어요?


대부분의 평일은 이미 단단한 리듬으로 묶여 있어요. 그 리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 것이 관건입니다. 요즈음 코로나로 온전히 재택 근무 중이에요. 제 업무는 대체로 오전 10시부터 시작합니다. 글로벌 회사여서, 종종 조금 더 이른 아침 콜도 있고, 좀 늦은 밤의 회의도 있곤 해요. 그 때 그 때 유기적으로 대응하죠.


아이가 요즘 온라인으로 수업 중이라, 픽업 등에 시간을 할애하지 않아도 되는 게 저에겐 큰 이득입니다. 오프라인으로 수업할 때엔 학원 등하원 픽업을 반드시 하는데, 그 사이는 학원 앞 토스트 가게와 한스 케이크가 제 일터가 됩니다. 아이의 규칙적인 스케줄에 맞춰 일과 생활의 리듬 블럭을 유연하게 조절해요. 보통 6시까지 장소 불문하고 일을 합니다. 

- 그 단단한 리듬 중 반드시 지키는 생활 루틴은요?


아이와의 식사 시간과 운동 시간, 저녁의 독서 시간, 기록 시간은 반드시 지킵니다. 하고 싶은 일이 많은 사람이다 보니, 제 능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시간을 늘이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보통 취침시간이 새벽 2,3시죠. 업무를 6시쯤 마무리하고 운동을 다녀오고, 책도 읽고, 기록 시간을 갖고, 글도 쓰고 합니다. 아이가 숙제를 하고 제 할 일을 하는 밤 시간엔 저 또한 함께 책상에서 코워킹의 시간을 보내죠.(방을 같이 쓰거든요) 자기 전, 아이는 덕질 공간에서 폴꾸(폴라로이드 사진 꾸미기)를 하고, 저는 책을 보곤 해요. 그렇게 하루의 시간을 늘려 살다 보니 질 좋은 수면과 강한 체력은 필수죠. 



- 하루를 정말 길게, 밀도 있게 사용하시네요.


맞아요. 제 하루가 다른 사람들의 3배속쯤 되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곤 해요. 바쁜 날은 바쁜 채로 꽉 채우고, 노는 날도 노는 것으로 꽉 채워 노는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무엇인지를 바라보기 시작했어요. 그게 일정 관리였고, 그래서 정말 철저하게 일정 관리를 해요. 우리 모두에게 공평한 24시간. 나의 24시간을 들여다보는 거죠. 

- 그렇게 철저하게 일정 관리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아이가 말을 시작하고서 매일 아침 제게 “엄마 오늘 회사 가는 날이야?”를 물었어요. 무슨 요일인지 묻는 것이 아니에요. 아이에게 일주일은 그저 ‘엄마가 회사 가는 날’과 ‘엄마가 회사 가지 않는 날’로만 구분되는 거죠. 그럴 때는 정말 매번 무너지는 날들의 연속이었어요. 최선은 나의 스케줄을 아이에게 이해시키는 거였고 그래서 매주 수요일은 재택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이에게 말했죠. 엄마는 월화수목금을 일하고 그중 수요일은 집에서 너와 함께 일할 거라고요.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은 늦을 수 있고 나머지 날들은 꼭 일찍 들어오겠다고요. 그리고 ‘약속한 그 규칙을 정말 무조건 지킨다’가 삶의 원칙이 됐습니다. 이걸 지켜내려면 철저한 일정 관리를 할 수 밖에요. 



- 재택근무 시도가 10년도 더 된 일이네요. 재택 근무 선구자라고 할 수 있겠어요.


맞아요. 전 재택을 일찍 시작한 편이라 팀원들과 재택 근무 체험을 집에서 함께 하기도 했었어요. 팀원들은 그 경험으로 재택 근무야말로 얼마나 프로의식이 강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해요. 아이의 학원 자습실, 학원 근처 주차장 계단이 저희 조각 일터가 되는 과정을 함께 했으니까요. 재택근무는 회사로부터의 자유나 업무에 대한 회피가 아니에요. 엄마들이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선택한 ‘2배 더 힘든’ 업무 수행 방식이죠. 



- 맞아요. 재택 근무는 엄마에게 일이 두 배가 되는 과정이죠. 그 안에서 허둥대다 보면, 앞이 안 보일 때가 많아요.


하지만 다행인 건 엄마의 시간도 항상 같은 지점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저도 엄마로서 너무너무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죠. 한참 어린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은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하지만 그런 날들이 항상 있는 건 아니니까요. 현재 저의 삶이 편안해 보이는 건 이미 그 전쟁의 터널을 지나왔기 때문이죠. 터널을 지날 때 헤드라이트 빔을 의지해야 하잖아요. 우리도 그 빔을 켜야 해요. 그 빔은 사람이 주는 힘인 것 같아요. 

- 하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헤드라이트가 없다고 여겨지는 사람도 많을 거에요. 당신이 터널을 지날 때 의지했던 헤드라이트는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나요?


아이였어요. ‘내가 머뭇거리는 순간이 미래에 내 딸이 머뭇거리는 순간이다’라고 생각하면 계속 앞으로 갈 수 있었거든요. 아이가 돌 막 지났을 때, 회사를 그만둘까 고민했었어요. 그래서 4개월 가량 휴직을 했었죠. 그때 정말 아이와의 시간을 치열하게 보냈어요. ‘뭐든 다 해주리’, 하고요. 그런데 그렇게 힘들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 자신을 위해 뭔가를 또 해야 직성이 풀리는 거예요. 영화라도 한 편, 책이라도 한 권. 그래서 새벽에 잠을 못 잤고 결국 7kg이나 살이 빠졌죠.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난 나의 성취를 위한 일도 하는 엄마여야 하겠구나. 여러 엄마의 모습 중에 일하는 엄마도 있는 게 당연한 거니, 난 나의 딸에게 일하는 엄마의 모습으로 남자’. 제가 이렇게 하고 싶은 걸 접고 머뭇거리면, 미래의 내 딸도 그 때쯤 똑같이 머뭇거릴 거라 생각하니 내가 멈추면 안되는 거였어요. 나의 아이는 멈추지 않았으면 좋겠거든요. 


- 시간관리를 잘 하고, 또 멈추지 않고 싶지만 엄마들의 삶엔 돌발적 변수가 너무나 많잖아요. 그럴 때 그냥 와르르 무너져버릴 때가 있어요. 오랜 시간 관리를 해온 선배로서 이런 상황을 마주한 엄마들에 도움을 주신다면요?


친구들이 슬럼프가 왔다고 하면 이렇게 말하곤 해요. 작은 단위로 시간 일정을 짜고 그 각각을 해내는 작은 성공들을 통해 슬럼프에서 조금씩 벗어나는 연습을 해보자고요. 이게 제가 넘어지지 않고 하루하루를 잘 지내는 방법이기도 하거든요. 시간관리에 대한 노하우가 쌓인 것은 저 역시 ‘무너짐의 반복’ 덕이라고 생각해요.


30대 중반, 아이를 낳았죠. 이후 전 엄청난 노력으로 나의 하루, 일 주일, 일 년의 리듬을 만들어갔어요. 출근과 퇴근, 그리고 아이와의 저녁 시간, 늦은 밤 가족과 일의 공백을 메우는 시간, 그리고 나서야 생기는 작은 조각 같은 나를 위한 시간. 결국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간을 줄이자는 것이 목표가 됐죠. 40대가 되면서, 나의 시간이 단지 나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시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걸 인지하게 되면서 더 최선을 다해 시간을 쪼개서 운영합니다. 

- 작은 리듬이 모여 아름다운 선율이 되는 거네요.


하루, 일주일, 일 년의 스케줄을 잘 관리하는 것을 넘어서, 일과 휴식의 완급 조절과 가족을 위한 시간, 친구들을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시간, 또는 어느 공동체를 위한 시간 등, 하고 싶은 일들이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어요. 그러니 나만의 리듬을 알아내는 것, 그 리듬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 그리고 리듬의 조각들이 아름다운 음악이 되기까지의 모든 순간이 중요해요. 숱한 작은 노력들로 그 리듬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죠. 

- 그 리듬을 체득하는 노력들이, 뉴노멀의 시대에 오면서 훨씬 더 절실해졌어요.


맞아요. 그래서 작년에 했던 것 중에 하나는 ‘밸런스 보기’였어요. 전 양의 밸런스가 아니라, 질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즐거움의 퀄리티가 균형을 잡고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그걸 바라보기 위해서 각 일정의 색깔을 시각화해서 다이어리를 관리해요. 어느 정도 균형이면 되는지를 감각적으로 느끼는 것, 그래서 그 균형을 시각화하는 것이 제게는 중요해요.



- 이런 촘촘한 시간 관리는 육아 동지인 남편과의 밸런스가 없다면 불가능할 텐데요. 비법이라도 있을까요?


남편과의 다름을 인정해요. 그래서 두 사람이 육아 시간의 용도를 다르게 해요. 이 역시 질적인 밸런스가 중요하니까요. ‘난 월화수 넌 목금토’ 이런 게 아니고. 내가 못하는 영역을 그가 질적으로 풍족하게 채우는 것이 중요해요. 남편이 잘하는 걸 잘하게요. 예를 들어 남편은 학습 지도를 좋아해요, 그래서 ‘아빠와 일요일 두 시간 과외 타임’ 같은 걸 하죠. 질적으로 만족스럽고 풍족한 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