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을 돌보듯 '꿈의 폴더'를 키워요

슬로우파마씨 대표 이구름




식물이 없다면 이 고단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요? 이구름 대표(@slow_pharmacy)는 슬로우파마씨라는 브랜드를 만들어 우리의 삶에 꾸준히 산소를 공급하는 중입니다. ‘식물 처방전’이라는 약국 컨셉 플랜트 브랜드 자체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너무 고맙지 뭐예요. 어쩌면 그녀는 타고난 브랜딩 전문가일지도 모르겠어요. 정신과 육체 노동이 집약된 식물 플래너로 매일을 바쁘게 살며, 4세 여아의 엄마로 굳건히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녀.


나무는 나이가 들수록 싱싱해 진다고 하는데, 나무와 한몸이 돼 사는 그녀가 꾸리는 삶도 그렇지 않을까 싶은 마음을 품고 질문을 툭툭 건넸습니다.

- 누구나 식물로 위로는 받는 세상이에요. 식물과 동반자로 살아가는 대표님이 가진 위로의 경험은 더 깊고 진할 것 같습니다.


여름이든 겨울이든 매일 비닐하우스에 가요. 여름엔 물을 주려고, 겨울엔 연탄을 피워 온도를 맞춰주려고요. 내곡동에 있는 비닐하우스는 아픈 식물을 치료하거나 아끼는 식물을 데려다 키우는 곳이거든요. 그러던 어느 순간, 이런 깨달음을 얻았어요. ‘우리가 식물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이 식물들이 우리를 가꾸고 돌보고 있구나...’ 



- 구체적으로 어떤 깨달음일까요?


‘너무 빠르게 변화를 바라지 말 것, 어떠한 것도 겉모습으로 판단하지 말 것,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전부라고 판단 내리지 말 것...’ 식물은 매일 다른 얘기를 해주죠. 

- 요즘 같은 코로나 시절, 육아맘들에겐 어떤 식물 처방전을 내리고 싶은가요?


절대 죽일 수 없는 식물을 처방하고 싶네요. 잘 자라는 식물을 보며 좋은 기운이 쑥쑥 나도록 말이예요! 제 큰언니는 두 살 터울 남매를 집에서 돌보며 이 시기를 보내고 있어요. 너무 답답하고 힘겨운 시기일 게 뻔해 제가 큰 화분을 보내준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계속 죽이기만 하는 자신이 싫어진다며 계속 거부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날 제가 몬스테라를 화병에 담아 가져가서는 이름을 ‘쑥쑥이’로 붙여주고 왔어요. 수경재배를 할 수 있게요. 그렇게 하면 절대 죽지 않거든요. 

- 사회적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되는 중이에요. 하지만 반려식물은 생명체인데도 인테리어의 일부라 생각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식물을 곁에 들일 때의 마음가짐 한 수 알려주세요.


단순히 아름다움을 소비하기 위해서가 아닌 나와 함께 오래 있을 친구를 들인다는 마음을 갖는 게 중요해요. 가끔은 식물을 구매한 후 포장도 풀지 않은 채 오래 방치하셨다는 분들도계시고, 때론 ‘물을 줘야하나요?’ 라던가 ‘물 안 주고 쉽게 키울 수 없나요?’ 라고 묻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 슬로우파마씨의 세심한 브랜딩은 반려식물을 돌보는 세심함과 일맥상통 하는 것 같네요.


뭐든 세심히 공을 들이려고 하죠. 음...처음도 그랬고 지금도 우리의 홍보 채널은 인스타그램 하나밖에 없어요. 초창기에는 인스타그램 계정을 세 개나 만들었어요. 하나는 사진보정용, 다른 하나는 사진을 먼저 올려보고 피드 전체 레이아웃이 괜찮은지 확인하는 용, 그리고 실제 팔로워들에게 보여지는 계정. 우리가 컨셉이 확실한 브랜드라고 여기게끔 이미지 하나만으로 스토리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 그러고 보니 그간 대형 프로젝트가 참 많았네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뭐였을까요?

2019년 12월에 진행되었던 GD x NIKE 콜라보레이션 파라노이즈 현장은 정말 대규모였어요. 지금까지 프로젝트 중에 가장 큰 나무를 데려왔고 올림픽공원 광장이라는 큰 무대를 전체적으로 식물로 꾸며야 했었거든요. 


-자신만을 위한 재투자, 혼자만의 시간에 하는 셀프 마사지가 따로 있나요?


운동하는 시간과 책 읽는 시간이죠. 운동을 꾸준히 해요. 주로 실내 자전거를 40분 정도 타고, 힘이 더 남는 날에는 홈트 영상을 보며 따라 하고요. 책도 일주일에 한 권씩은 어떻게든 읽으려고 하고요. 

- 어머님이 오랜 시간 화원을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식물연구가 선배로서 어머니께 배운 가장 중요한 한수는 무엇일까요?


어머니가 우리 세 자매에게 준 교훈은 ‘행복한 일을 하라’인 것 같아요. 어머니는 늘 꽃 일을 하는 것을 즐기며 하셨어요. 진심으로 행복해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우리에게 모두 전해질 정도였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그 모습이 우리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져 내려왔다고 생각해요. 



- 본인도 이제 4세 아이를 둔 엄마예요. 아이에게 어떤 엄마이고 싶나요.


‘엄마도 한 명의 멋진 사람이구나’라는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아빠도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살고 있구나’ 하고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성실하게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으로 내내 보였으면 좋겠어요. 



- 육아맘으로서 일과 육아 사이의 그 균형을 지키기 위한 삶의 원칙 같은 게 있을까요?


전 일하는 시간, 아이와 보내는 시간으로 일상을 나누고 각각 온전히 집중하죠. 만약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선 이렇게 생각해요. ’그건 내가 부족한 엄마라서가 아니다. 일에도 아이에게도 최선을 다하고 어느 쪽도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말자.’ 

- 육아는 부부간의 파트너십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죠. 대표님은 슬로우파마씨를 남편 정우성님과 함께 하시잖아요. 일터, 가정 모든 면의 파트너로서 두 분에겐 환상의 파트너십이 느껴지네요.


남편은 슬로우파마씨의 뮤즈예요. 저보다 남편의 모든 삶의 모습이 슬로우파마씨에 가까워요. 연애시절에 슬로우파마씨를 만들었고 이름 또한 남편이 지어주었죠. 육아에서도 일에서도 완벽한 파트너예요. 일에서도 서로 믿음이 충만하고, 육아 또한 정말 공평하게 해요. 하하. 서로 밸런스 있게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서로의 역할을 잘 분배하고 있는 것 같아요. 



- 당신의 육아 철학 ‘이거 하나만은 지켜야지’ 하는 부분이 궁금해요.


‘내가 가진 생각을 아이에게 주입하지 말자’가 원칙이에요. ‘이건 좋은 거야 이건 나쁜 거. 이렇게 했으면 좋겠어. 저렇게 하지마’. 이런 말은 최대한 안 하려고요. 물론 기본적인 예절과 꼭 지켜야 하는 상황들은 짚어주지만요. 



- 식물 전도사로서, 아이와 하는 특별한 놀이가 있을까요?

특별한 건 없고 주말마다 시골에 있는 아산 부모님의 정원에 가서 같이 놀고 일해요. 정원에 가면 자연에서 할 거리가 많아서 따로 놀 거리를 찾지 않고도 시간이 빨리 가죠. 그냥 흙을 파면서 놀기도 하고, 뒹굴기도 하고, 나무를 관찰하기도 하고, 나뭇잎이나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보기도 해요. 

- 아이를 낳고 나서 식물을 포함한 자연을 대하는 자세가 남달라졌을 것 같아요. 앞으로 아이들을 위한 활동 계획도 있을까요?


내가 사라진 후에 아이가 살아갈 미래의 지구를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아이가 더 나은 자연환경에서 자랐으면 하는 마음도요. 그래서 환경에 관심도 많아졌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정말 이렇게까진 아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을 위한 '자연 숲, 식물활동'은 제 꿈의 폴더에 꼭 있어요. 당장이라도 아이들을 위한 어린이집과 유치원, 숲 놀이터를 만들고 싶어요. 슬로우파마씨가 꼭 이 일을 해냈으면 좋겠어요. 



- 당신이 컴퓨터에 만들어 놓았다는 꿈의 폴더엔 아직도 이루지 못한 것이 많나요?


꿈의 폴더에는 아직도 많은 이미지들이 있고, 심지어 매일매일 쌓여가고 있어요. 대부분의 것들은 내 생의 마지막까지도 이루지 못할 것 같은 이미지들이지만 이런 것들이 모여 내 삶을 이 방향으로 움직여줬음 좋겠다 하는 것들이죠. 

- 마지막으로! 나중에 더 자라서 70대가 되면. 그땐 어떤 사람, 어떤 할머니가 되었으면 하나요.


이 질문 너무 행복하네요. 지금처럼 바쁘지 않길... 바라요. 그때는 조용히 정원을 가꾸면서 정원일지를 쓰고, 차를 내려 마시며 책을 읽는 모습을 상상했어요. 70대여도 몸을 바지런히 움직이며 정원을 가꾸고, 늘 책을 읽으며 배우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