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도 육아도 촘촘히 계획해요
키티버니포니 대표 김진진
엄마들 사이에서 키티버니포니는 뭐랄까요, 패브릭 인테리어의 기본서 같은 느낌이에요. 2008년 패턴 불모지였던 이 땅에 도형과 자연을 소재로 한 세련된 무늬를 흩뿌려 놓은 선구자적 브랜드 키티버니포니. 사실 그 이전엔 이렇다 할 패턴 브랜드가 국내에 있기나 했었나요?
런칭 이후 지금까지 수려한 행보로 우리를 늘 쇼핑 시험에 들게 하는 키티버니포니의 수장 김진진 대표를 만났습니다. 어떤 새로움도 과하지 않게 전달하는 균형감, 한결같이 자신만의 색을 이어가는 꾸준함, 일과 생활 사이에서 찾은 평정심(초등 3학년 남아를 키우는 육아맘인 그녀)... 이 모든 건 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듣고 싶었습니다. 물론 이김에 합정동 메종 키티버니포니의 신상을 잔뜩 보고 오려는 사심도 있었죠.
- 메종 바깥채가 패브릭 매장으로 변신했네요.
네. 작년 4월에 브랜드 런칭 이래 최초로 원단을 팔기 시작했어요. 원래 그곳은 오랜 시간 서점이었어요. 그런데 작년에 ‘우리가 서점을 하는 게 맞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우리의 근본인 원단을 팔기로 했죠. 그래서 일 층엔 원자재가 있고 그 외의 공간엔 그 재료를 이용한 상품이 있는 공간이 됐죠. 이제 완전체가 된 느낌이에요. 앞으로 원단으로 할 수 있는 일을 꾸준히 늘려갈 생각이에요. 마스크 끈, 코스터 등의 원단 DIY 세트도 반응이 좋았거든요. 공간은 작지만 소규모 클래스 같은 것도 상황을 봐서 꼭 하고 싶어요. 원단으로 할 수 있는 작업은 정말 너무나 많아요.
- 키티버니포니는 이제 14년차 브랜드네요. 2008년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키티버니포니를 1,2,3기로 나눠 볼 수 있을까요?
1기는 2008년 아버지와 제가 둘이 브랜드를 시작한 초기 3년 정도? 그땐 제조 공정에 제일 신경을 많이 썼죠. 초반부터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빨리 알려져서 수시로 기뻐하기도 하고 긴장하기도 하고 그랬었죠. 2기는 메종을 오픈한 2015년 전후인 것 같아요. 브랜드가 급성장하는 시기였거든요. 그 당시 SNS를 이용해 우리를 더 쉽게 알릴 기회가 많아졌고 아리따움, 파리바게트 등 빅브랜드와의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활동을 통해 홍보가 많이 됐죠. 당시 로고 에코백이 5만 개 이상 팔리면서 큰 힘이 됐어요. 3기는 지금이에요. 안정기라고나 할까요? 안주하겠다는 게 아니라 더이상 우리를 알리기 위해서는 큰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기라는 의미로요. 하지만 지금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치열하게 상품을 개발하고 디자인을 해내야 하는 때인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 등장하자마자 인기를 얻은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패턴 디자인 분야가 블루오션이던 시절이어서 라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처음 이 사업을 하자 했을 때 전 겨우 26살이었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었고 취직을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아버지는 여러 이유로 그때가 적기라 생각하신 것 같아요. 당시 한국엔 이렇다 할 패턴 브랜드가 없었거든요.
- 아버지가 깨어있는 분이시네요.
당시 아버지 논리는 심플했던 것 같아요. 인터넷 쇼핑몰을 열면 고객에게 물건 값을 바로 받으니 참 합리적이라는 사실에 주목하신 거죠. ‘요즘은 인터넷으로 돈을 번다며? 우린 옛날 처럼 돈을 떼일 일도 없겠네!’ 하며 신기해 하셨어요. 사실 당시 인터넷 쇼핑몰은 다 패션 아이템을 팔았었죠. 리빙 전문 인터넷 쇼핑몰은 없었어요. 매장 없이 온라인몰로 시작한 키티보니포니는 정말 용감했던 거죠.
- 아버지는 대체 어떤 분이셨던 거에요?
94년부터 대구에서 자수 공장을 하셨는데요, 워낙 미술을 너무 좋아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제가 미술 전공하는 걸 지지해 주셨어요. 입시 공부를 할 땐 제가 그린 그림에 대한 감상을 정말 꼼꼼히 해주셨고, 심지어 어렸을 땐 아버지가 매일 일기를 검사해서 세심한 코멘트를 써주시곤했죠.
- 그렇게 시작한 브랜드를 십여 년 간 끌고온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자 경영자예요. 무게감이 상당할 것 같은데요?
하하. 힘든 적이 너무 많았어요. 그래서 마음이 무너진 적도 많았고요. 그래서 3,4년 전부터 경영의 디테일을 동생과 나누고, 전 디자인에 시간을 많이 쓰고 있어요.
- 엄마가 된 것이 그런 업무 조정에 영향을 끼쳤나요?
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이에요. 아이는 저의 일과 삶을 들었다 놨다 했죠. 육아 초기엔 시간이 없어 평일에 잠깐, 주말에 겨우 아이를 돌보곤 했죠. 18개월부터 어쩔 수 없이 놀이학교에 보냈고요. 그런데 아이가 세 살쯤 되었을 때 ’뭐가 인생에서 더 중요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 결심했죠. 수요일 오후 반나절을 빼기로요. 그날만큼은 아이 하원을 제가 맡았어요. 사실 이전엔 제가 회사에 없음 큰일 나는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나던 걸요? 그게 시작이었어요. 점차 아이를 보는 시간을 늘려 갔죠. 나중엔 하루, 그 다음엔 이틀을 뺐죠. 그러다 4살부터 8살까지 5년 동안은 내가 사무실에 없어도 회사가 돌아갈 수 있게 조금씩 변화를 줬어요. 일과 육아 시간 균형에 대한 목표를 세우고 그걸 하나씩 격파해가면서 여기까지 왔네요.
- 그게 가능하다니, 놀랍네요.
제가 계획을 좀 촘촘하게 세우고 또 열심히 완수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지금은 하루에 몇 번이나 집에 왔다 갔다 하면서 일을 해도 큰 지장 없을 만큼 시스템을 갖췄어요. 학교에서 돌아 올 땐 늘 집에 있어주고 싶고 그렇게 정서적인 안정을 주고 싶거든요. 제가 일과 육아를 병행하며 깨달은 건, 아이의 맘이 편하면 나도 편하고 회사도 편해진다는 거예요. 한마디로 진정한 ‘가화만사성’이랄까요? 나라는 사람은 한 회사의 대표잖아요. 제 심리나 기분이 회사 전반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으니 제가 평온하고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는 게 무척이나 중요해요.
- 당신의 육아 철학이 궁금해 지는 순간이네요.
전 예의를 중요시 해요. 어른에게 버릇 없게 군다거나, 공공 예절을 지키지 않는다거나, 배려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건 안돼요. 하지만 집에서는 엄마, 아빠 누구나 친구가 돼죠. 놀이에 있어선, 전 아이가 하자는 건 다 해요. 아이가 뭘 시작하면 저도 같이 배우거나 해요. 스키도, 피아노도, 자전거도 그랬죠. 아이가 외동이라 형제가 없으니 부모가 친구가 돼줘야죠. ‘안돼’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이런 저런 거 남들 하는 거 해보고 싶다면 다 해보게 해요. 위험하거나 건강을 해칠 정도가 아니라면요.
- 학습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따로 있나요?
학습적으로는 영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영어는 해야해', 주의랄까요? 그건 공부의 차원이 아니라 경험을 늘리는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봐요. 세상의 수많은 경험을 놓치게 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하나요?
단 하나의 소원은 아이가 뭔가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거에요. 재미있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공부가 최선인 시대가 아니잖아요.
- 아이와 놀 때도, 당신의 직업이 영향을 끼칠 것 같아요.
네,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제가 놀이 도중 색을 엄청 디테일하게 강조하더라고요. 장난감을 고를 때도 디자인을 무척 따지게 되고요. 세상에 존재하는 아름답고 예쁜 걸 많이 보여주고 싶어서요. 사실 사람이란 자란 환경에 영향을 받잖아요. 유럽에 태어난 아이들이 보고 자라는 그 환경을 생각하면... 우린 너무 까마득한 거죠. 그래서 생각해요. 나의 환경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아름다운 걸 보여주고 싶다고요.
- 그래서인지 아이가 어릴 때 여행을 많이 다닌 걸로 알고 있어요.
네. 전 ‘아이가 어릴 때 여행을 다니면 기억도 못하는데 왜 다니냐’는 식의 말을 썩 좋아하지는 않아요. 정확히 기억못할 수는 있겠지만 아이의 정서 안에 다 녹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독일 전역, 런던, 캐나다 등 같이 간 여행은 다 좋았어요. 여행도 아름답고 멋진 걸 많이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커서 열심히 다닌 거 같아요. 세 식구가 항상 세트로 다녀요. 부부가 가고 싶은 미술관도, 아이가 가고 싶어 하는 놀이터나 공원에도 항상 함께요.
- 엄마들을 시험에 들게 한 코로나 시대에요. 어떻게 지냈나요?
이전에 아무리 일을 줄이고 육아를 병행한다 해도 이렇게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낸 건 처음이었어요. 붙어있으니까 아이를 제가 너무 세세히 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단점을 보고 잔소리를 하게 되고요. 그래서 회사에 데리고 나왔어요. 너는 네 일, 나는 내 일. 같은 공간에서 그렇게 지내봤더니 잔소리가 없어졌어요. 같이 있되 거리를 두는 거, 너무 중요한 거 같아요. 아이의 마음도 너무 편해 보였어요. 저 역시 방학 때 아무 것도 안 해도 된다는 큰 깨달음을 얻었죠. 여행도 일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짜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이었거든요. 이번엔 집콕 방학을 보내게 되면서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을 얻은 거죠.
- 강도 높은 일과 육아에 지칠 때 뭐 하세요?
운동을 꾸준히 해요. 필라테스, 수영을 했었고 지금은 요가를 해요. 극한의 스트레스를 넘어서서 이제 일 자체는 스트레스가 아니에요. 오히려 일을 한다는 그 자체가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돼요.
- 일이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니 아름답네요. 그렇다면 키티버니포니의 신년 플랜은 무엇인가요?
이렇게 앉아 있어도 늘 뇌 속에선 사업 구상 버튼이 눌려 있어요. 리빙 브랜드를 하다 보니 모든 일상이 일과 연결 되거든요. 음…올해 꼭 하고 싶은 일은 키티버니포니 북을 이어서 더 내는 거예요. 첫 책이 작년에 나온 패턴북이었어요. 이어서 제작 공정에 대한 책을 내고 싶어요. 두번째 계획은 키티버니포니 웨어 카테고리를 널리 알리는 거고요. 세번째는 직원 전원이 다같이 잘 쉬고 다같이 즐겁게 일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 ‘잘 쉬고, 잘 하자’. 멋지네요.
예전엔 항상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제가 쉬어 보니 알겠더라고요. 쉬어야 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요. 누군가 쉴 때 백업할 다른 동료가 있으면 돼요. 그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게 제 일이고요. 사실 올 한해 가장 주력하고 싶은 부분이에요.
- 참, 집은 어떤 스타일인가요? 리빙브랜드 수장의 집은 남다를 것 같아요.
전 정리정돈을 엄청 하는 스타일이에요. 공간 생활이 효율적으로 운영되는 걸 좋아하죠. 정리정돈,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공간이 아름다워지니까요. 기능적이고 깔끔하고 심미적인 가구를 고르고 제자리에 배치하는 건 기본이고요.
- 코로나 시대를 사는 엄마들에게 기분 전환 용 인테리어 팁을 준다면요?
무조건 쿠션을 바꾸라 권하겠어요. 쿠션 하나로 공간이 달라보여요. 작은 소비인데 그 효과는 매우 크죠. 아무리 기분 전환을 하고 싶다고 소파를 덜컥 바꿀 수는 없잖아요. 아름다운 패턴의 쿠션으로 기분 전환 하시길 추천합니다.
- 마지막, 질문입니다. 스티커의 공식 질문이죠. 70대엔 어떤 사람이 되었으면 하나요?
일을 계속 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감각을 계속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살도 많이 안 찌고 지금처럼 계속 유지하고 싶어요.
- 머리에도 몸에도 군살이 없는 상태를 말씀하시는 거네요. 몸 관리도 계획적으로 하나요?
하하.네. 5년 동안 밀가루를 줄이는 식단을 하려고 노력중이에요. 빵, 과자, 국수 같은 걸 최대한 안 먹는 걸로요. 군살이 없는 삶을 살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