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하지 않게 살아요

클랩 스튜디오 대표 김민정




엄마가 되고부터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훨씬 더 대범해졌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틀에 많이 갇히기도 했죠. 뭐가 뭔지 몰라서 허둥거리던 초보 엄마 시절을 지나 이제는 ‘이래야만 한다’라는 정형적인 틀들이 조금씩 생기게 되죠. 


누군가 그랬죠, “삶이란 자신을 찾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을 창조하는 과정”이라고. 육아도 그런 것 같아요. 어떤 정형적인 몇 가지 형태의 엄마 중 나에게 맞는 걸 찾는 게 아니라, 나만의 육아법으로 새로운 엄마를 창조해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뻔하지 않은 육아법과 삶을 보여주는 클랩 스튜디오의 민정님(@clapmindy)을 만났어요. 그녀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나만의 육아법을 창조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단단해지네요. 여러분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5살과 2살 된 아들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예요. 아직 둘째가 돌 전이라 정신이 없는 상태죠. 미국에서 공인 음악 치료사로 일하다가 한국에 와서 2014년부터 어린이 융합 예술 교육 수업을 하는 클랩 스튜디오를 운영 중이에요. 



- 클랩 스튜디오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어요?


대학에서 피아노 전공을 했었어요. 한국에서는 줄곧 예원, 예중, 예고를 다니면서 전통적인 음악 교육을 받았었죠. 클래식 음악 연주자로 사는 것은 자기와의 싸움이에요. 굉장히 오랜 시간을 혼자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남들에게 제 음악을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작업이었죠. 사실 그 시절 저는 무대 공포증까지 있었던지라 음악이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미국으로 유학을 갔죠. 그 곳에서 배우게 된 음악 치료는 내가 아닌 타인에게 집중해서 그 사람을 치료하는데 음악을 이용하는 거라 다시 음악에 대한 흥미를 찾을 수가 있었어요. 근데 또 음악을 치료의 도구로만 여기다 보니 어떻게 음악을 아름답게 쓸 수 있을까에 대한 부분은 놓치게 되더군요. 한국에 돌아와 아름다우면서도, 효과적이고, 또 쓸모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것에 관심이 생겨서 클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 구체적으로 클랩의 수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클랩의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그림책을 음악으로 읽는 ‘북 클럽’이에요. 그림책을 저희가 작곡한 오리지널 노래로 읽어주면서 다양한 융합 예술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게 해요. 만약 책 속에 악기가 나오는 씬이 있으면 아이들이랑 직접 연주도 해보고, 음식이 나오면 함께 음식도 만들며 책 하나를 깊숙이 들어가 보는 수업이에요. 초반에는 콜라보레이션도 많이 했었어요. 부엌이 나오는 씬이 있으면 실제로 레스토랑 부엌에 들어가서 수업도 해보고, 책 속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꽃을 선물하는 장면이 나오면 플로리스트랑 같이 꽃도 골라보면서요. 책의 분위기나 책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정수들을 정해지지 않은 형태로 많이 보여줘요. 클랩이라는 뜻 자체도 ‘Creative Learning through Arts & Performance’에요. 정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수업을 많이 해요.


또 다른 수업 중 하나는 ‘파자마 음악 시간’인데, 집에서 파자마 입고하는 음악 중식의 수업이에요. 돌 안된 아이부터 8살 아이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같이 하고 있어요. 

- 요즘 코로나 탓에 변화가 많이 생겼겠네요.


코로나로 인해서 재택근무를 자주 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 온라인 상으로 회사 일을 진행할 수 있는 많은 툴들, 예컨대 노션이나 줌 같은 것들을 사용하게 됐죠. 코로나 때문에 회사를 운영하는 방법이나 수업 자체도 많이 디지털라이징 되었어요. 일하는 엄마로서 풀타임으로 회사에 매이지 않고도 일할 수 있게 시스템이 구축된 건 코로나 덕분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 맞아요. 코로나가 어떤 점에서는 우리를 더 빨리 미래로 데려다 놓기도 했죠.


네, 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수업도 대부분 온라인으로 운영하는데 전 오히려 여기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았어요. 해외에서 저희 같은 음악 수업을 하면 부모님들이 같이 춤도 추고 적극적으로 참여를 하는데, 한국 부모님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어요. 근데 오히려 온라인으로 집에서 수업을 듣다 보니 더 편해서 그런지 부모님들이 더 재밌게 참여하고 계세요. 

- 교육자다 보니 내 아이가 더 잘 성장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지 않나요?


예전에는 그런 압박이 있기도 했는데 이제는 저만의 기준이 생겼어요. 오히려 아이가 어떤 모습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에 자유로워졌어요. 결혼과 육아를 하면서 사람의 좋은 자질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돼요. 젊었을 땐 제가 멋지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기준이 지금과는 좀 달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인내심이 강한 사람, 기다려줄 줄 아는 사람이에요. 엄마가 되고 보니 이게 얼마나 큰 가치인지 알게 됐죠. 



- 둘째를 낳고서는 또 달라진 점이 있나요?

둘째를 낳고 전 위안을 얻었어요. 아이가 하나만 있을 때는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가 다 저의 영향인 것 같았죠. 물론 그게 아니라는 걸 끝없이 배웠지만, 마음으로는 그게 안되더라고요. 근데 제 배에서 나오자마자 첫째와는 완전히 다른 둘째를 보니 뭔가 내가 낳았어도, 같은 사람이 키워도 아이는 다 다르게 큰다는 게 확인 되니깐 뭔가 안심(?)이 됐죠. 



- 아이가 생기고 나서 교육자로서의 철학도 달라졌나요? 


열정이 너무 많던 예전에는 수업을 준비한대로 완벽하게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육아맘이 되고부턴 좀 더 다른 면에서 많이 보게 돼요. 예를 들어 예전에는 누가 수업 중간에 들어오면 수업의 리듬이 끊어진 것 같아 속상했어요. 근데 지금은 그때 들어 온 친구에게 인사도 해줄 수 있고, 그런 기회를 이용해서 아이들과 더 상호 작용하며 즐거움을 느끼게 해줘요. 예전보다 수업에 여유가 생기고 수업 속에 숨 쉴 공간을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제 생활 전반에도 그런 틈과 여유가 생겼어요.


- 아이와 어떤 식으로 음악 활동을 하면 좋을까요?


음, 전 음악이든 놀이든 무엇이 됐든 너무 아이들의 콘텐츠를 제한하지 않아요. 전 아이랑 뮤직 페스티벌도 자주 같이 갔었는데 너무 좋았어요. 야외 페스티벌은 지루하면 돌아다녀도 되고 소리를 내도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덜하잖아요. 생각보다 음악 들으러 오시는 분들은 더 열려 있는 것 같아요. 아이랑 같이 놀 준비가 되어있다고나 할까요. 저는 야외 뮤직 페스티벌 가시는 거 적극 추천해요. 물론 코로나가 끝나야 하겠지만요.


지금은 또 무료로 풀려있는 질 좋은 온라인 콘텐츠들이 많아서 오히려 아이들과 함께 음악적인 도전을 하기에는 좋은 시점인 것 같아요. 필하모니 공연부터 시작해서 오페라나 무료 온라인 콘텐츠가 많으니 그런 것 중에서 골라서(온라인 콘텐츠는 중간에 뭐나 나올지 모르니 꼭 부모님이 먼저 보시는 걸 권해요!) 아이와 편하게 시작해 보는 것도 추천해요. 사실 공연을 실제로 보러 가는 건 아이들을 데리고 나오는 과정 만으로도 에너지가 소진되잖아요. 근데 집에서 보면 부모님도 여유가 있고 아이들이 컨디션이 좋을 때 보면 되니 아이들도 더 잘 즐기는 것 같아요. 이게 또 새로운 형태의 문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아이랑 해본 평범하지 않은 도전은 뭐가 있나요? 


첫째가 아기였을 때 남편이 육아 휴직을 하고 한 달 정도 호주 여행을 갔었어요. 그때 멜버른을 갔었는데, 제가 가 본 도시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도시였어요. 어느 곳에 가도 젊은이부터 노인, 아이, 장애인 등이 다 섞여 있었어요. 아주 힙한 클럽에도, 심지어 마라톤을 가도 유모차를 밀면서 뛰는 가족도 있고, 진짜 진지하게 뛰는 사람도 있고, 개도 있고. 그런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그때 아이랑 하는 활동도 많이 열려 있다는 걸 느꼈죠. 

- 호주 여행이 민정님의 일에도 영향을 미쳤나요?


아이와 관련된 많은 수업이 ‘아이들에게 벗어나서 쉴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주겠다’, ‘이걸 주문하면 아이들이 몇 시간은 혼자 논다’라는 식의 캐치 프레이즈를 부모님들에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이런 게 매력적으로 다가오기도 하지만 클랩 수업은 그렇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수업 시간에 부모님과 아이 간의 상호작용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둘만의 음악적 언어가 생기고, 이걸 수업이 끝난 다음 집에서도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게 더 큰 효과잖아요. 클랩을 운영하며 흔들리는 순간들도 있었는데 호주 여행 이후로는 수업에 심지가 더 강해졌어요. 



- 앞으로 또 아이랑 어떤 틀을 깨보고 싶어요?

요즘 드는 생각은 애가 있는 가족들하고만 놀지 말자에요. 왜 애가 있으면 계속 아이가 있는 집이랑만 놀게 되잖아요. 근데 제 주변에는 비혼주의자도 있고 아이 없는 딩크족도 많아요. 아이에게도 다양한 형태의 삶과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려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올해는 더 많은 스타일의 친구들과 어울려 보려고요. 

- 일과 생활과의 분배는 어떻게 하나요?


전에는 완벽주의 성향이 있었던 건 같은데 지금은 많은 걸 내려놨어요. 많은 목표를 세워서 스스로를 괴롭히기보다는 할 수 있을 때,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로 바뀌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원래 하려던 일이 당겨진 부분이 있어요. 수업을 디지털라이징하고, 더 좋은 형태로 더 멀리 배포하는 것에 목표가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엄청난 속도로 그 일이 진행됐죠. 그래서 이제 수업 때문에 시간이나 공간에 매달리지 않아도 된다면 그 시간을 육아랑 균형을 잡는 데 더 쓰고 싶어요. 


-  직업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요. 


저랑 잘 만나는 자영업자 그룹이 있는데, 최근에 일할 때 돈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얘기한 적 있어요. 예전에는 무조건 내가 즐거운 일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즐겁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일을 하는 동안 나의 가족이 희생을 하는 부분이 있는 거잖아요. 그에 대한 보상이 어떤 식으로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생기다 보니 더 일에 대해 신중해야 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즐거움을 주면서 우리가 한 것만큼의 효과를 주는, 일에서의 효율 같은 것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돼요. 



- 일과 육아 사이에 나를 위한 무언가도 하나요? 


작년부터 실제로 나라고 믿었던 것에서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나의 취향에 들이는 시간이나 노력을 방치하는 느낌이랄까. 싱글이나 애가 없는 사람들은 살아 움직이면서 스스로 점점 성장해 가잖아요. 근데 저의 경우 회사나 아이는 커가는데 나는 과거에 남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작년 말부터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겠지만 일이나 육아에서 떨어져서 나를 보는 연습을 더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과 육아를 떠나서 내가 좋아하는 거, 나에게 기쁨을 주는 거에 대해 생각해봐요. 먹는 것부터 입는 옷, 그런 사소한 것부터 제 시선에서 더 생각하려고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