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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라도, 느려도 괜찮아요
<빨간 사과가 먹고싶다면> 사진그림 작가 가희
‘2025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의 <오페라 프리마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그림책,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은 스티커에서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죠. 이 그림책에는 서로 너무 다른 두 아이의 성장과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책 속 주인공인 지구와 지호 두 아이들의 모습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들 때문에 엄마 미소가 절로 납니다.
아이들 사진을 직접 찍고 작업한 작가이자, 지구와 지호의 엄마인 가희님을 스티커가 만나보았어요. 첫 그림책으로 큰 상을 수상하게 된 이야기부터, 그녀의 일과 육아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작업 이야기까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9살 지구와 8살 지호, 두 아이의 엄마이고, 인스타 초창기 시절부터 @jiguho_lee에 저의 일과 아이들 일상 사진들을 꾸준히 기록해오고 있는 이가희입니다. 지금은 공간 디자인 일과 그림책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어떻게 ‘사진그림 작가’가 되었나요?
서양화를 전공하고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가 지구, 지호를 낳고 퇴사를 했어요. 근데 아마도 저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좀 힘든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나만의 공간’을 직접 스타일링하고 그 사진들을 sns에도 올리고 그랬거든요. 그 사진들을 보고 처음에는 작은 작업이 들어오다가 점점 늘어나서, 제대로 사업자를 내고 배우기도 하면서 공간 디자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진그림 작업은 2023년도부터 시작했는데, 저의 사진 기록을 좋게 보신 작가 진주 님과 인연이 돼 하게 된 거죠. 그 첫 작업이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이에요.
첫 그림책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의 오페라 프리마 부분에서 무려 대상을 수상했어요!
사실 저는 이게 얼마나 크고 대단한 상인지 몰랐어요. 수상 발표 직후엔 정말 얼떨떨했죠.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가 많은 축하를 받고 수상 이후로 정말 바빠지면서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권위 있는 글로벌 어린이 도서 어워드입니다. 픽션, 논픽션, 뉴 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 4개 부분으로 시상하는데요 ‘오페라 프리마’는 올해의 신인상이에요.)
2025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식과 현지 행사장에서의 순간들
사진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특별해요. 어떤 식으로 작업하나요?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사진 그림책’의 시작은 진주 작가님의 기획과 글에서부터 시작됐어요. 저의 첫 사진 그림 작업이고요. ‘사진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들어가는 그림책의 모습은 다양해요. 카메라가 도구가 되는 사진 그림책이 있고, 사진을 매체로서 보여주는 사진 그림책이 있어요.
‘저의 사진 그림책’은 사진 자체로서 완성도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은 모두 사진으로만 이루어져 있죠. 연출부터 촬영, 디자인까지. 두 아들 지구, 지호와 함께 한 작업이에요. 회화성이 강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아이들과 교감을 하며 한 컷 한 컷 천천히 촬영을 했고요. 직접 큰 색종이를 오려서 공간 속에 꼴라주처럼 연출을 한 뒤 마지막에 셔터를 눌러요. 그것이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타이포그래피도 시도해 보며 저만의 그림을 만들어 나갔죠.
두 아이의 일상을 필름 카메라로 오랜 기간 담아 왔는데요. 그 꾸준함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음, 원동력부터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것의 힘'인 것 같아요. 사실 사진은 아이들을 만나기 훨씬 전, 저의 20대 때부터 저와 늘 함께 했던 거예요. 서양화를 그릴 때도 사진을 찍으며 작업했고, 디자인 회사나 공간스타일링 작업을 할 때도. 육아를 하면서는 자연스럽게 일상 속 아이들이 피사체가 되었고요. 캐논, 라이카, 휴대폰 카메라를 늘 곁에 두었어요. 돌아보면, 힘들었던 육아 시기를 제가 좋아하는 사진으로 해소했던 것 같기도 해요. 좋아하는 것을 계속했더니 그게 기록이 되고, 일로도 연결되었네요.
꾸준히 SNS에 기록해 온 육아, 공간, 작업 사진들 @jiguho_lee
수상 이후 북토크, 강의, 인터뷰, 전시회 등으로 일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죠?
수상 이후에 스케줄이 꽉 찰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긴 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내가 이렇게 여러 기관에서 강의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 게 맞나 싶어서 다음 그림책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 라이카 아카데미에서 사진 크리틱 수업을 듣고 있어요.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의 사진들이 사진 자체로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또 그림책은 책의 물성을 적극 활용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책 만듦새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된 책으로 까지 가져올 수 있도록, 북 아트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일상 사진과 달리, 작가로서 아이들과 사진 작업을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진주작가님의 이야기 기획은 2022년이었고요. 저의 사진그림 기획은 2023년 5월부터 시작했어요. 마지막 촬영까지 1년 반 정도 걸렸죠. 처음 원고를 받고 읽어보는데, 그림이 없는 상태임에도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더라고요. 거기서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서로를 믿으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촬영장소가 저의 외가인 ‘경남 사천’이어서 아이들 방학 때를 활용해 한 번 내려가면 많이 촬영하는 식으로, 총 세 번 정도 내려갔어요. 인천에서 경남으로 가는 차 안에서 촬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고, 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촬영 후 보상에 대한 약속도 확실히 하고 갔죠.
내 아이들과의 책 사진 작업이라, 의미 있고 즐겁고 그런데 어려운, 그런 거죠?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럴까요, 촬영을 하기 위해 일단 30%만 준비해서 내려갔어요. 도착해 보니, 시골 마당에 원래는 사과나무가 없었지만, 사과나무를 어찌어찌 구해서 가족들과 함께 반나절을 심으며 시작했고요. 다행이었던 것은, 엄마의 사진 찍는 모습이 익숙해서인지 아이들이 촬영을 어색해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와, 너무 잘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해 지호야?’ 이렇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계속 리액션해 주고 소통을 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참, 촬영 기간이 2023년도 여름과 2024년도 여름이었는데요, 1년 새 아이들이 자라서 옷이 잘 안 맞는 거예요. 그때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
육아를 하는 과정 자체가 일에 영감이 되었네요.
이야기를 어떻게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지에 대해 종종 아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작업 중인 작품에 ‘힘이 센 블루베리’ 이미지를 표현할 땐 지호가 좋아하는 핑크색 울퉁불퉁한 패딩이 떠올랐어요. 그 옷을 입으면 몸집이 큰 근육맨의 이미지가 귀엽게 그려져요. 또 지호가 좋아하는 스파이더맨 필통이라던가 로봇 같은 소품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고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호의 스토리도 담기고요. 아이들과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영감이 되죠.
그림책 속 지구는 주변을 살피느라 행동이 느리죠. 반대로 지호는 재빠르죠. 지구의 모습은 주변을 늘 살피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엄마들의 모습과 비슷해요.
저는 사실, 지구보다 지호에 가까운 엄마인 것 같아요. 저는 육아를 할 때도 최대한 도움받을 일이 있으면 가족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제가 힘들어지면 제 마음의 화나 슬픔이 다시 아이들이나 주변에 전달이 되잖아요. 때때로 육아나 교육에 관심이 부족한 엄마인가 하고 죄책감이 든 적도 있었죠. 하지만 책 속에서 서로 다른 두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다리고 성장하듯, 엄마의 모습도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전 힘들면 도움을 받거나 최대한 방법을 찾아서, 멘탈을 지키는 지호 같은 엄마이지만. 지구 같은 엄마도 있고 지호 같은 엄마도 있는 거죠.
일상 루틴이나 시간 관리 노하우를 공유한다면요?
크게 특별한 건 없지만요. 육아는 최대한 효율적이고 단순하게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 아침밥은 통밀 빵에 달걀과 사과, 토마토주스로 루틴 화해서 고민을 줄이면서도 건강한 습관을 들이려 하고요. 아이들 등교 후부터 4시까지 웬만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해요.
저녁에도 일을 해야 하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북카페에 가서 아이들은 책 읽고 저는 일하고. 배고프면 옆 가게 콩나물국밥도 종종 사 먹고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이에요.
공간 스타일링, 브랜딩 디자인 등 다양한 사진 작업들
작가님의 육아관이 궁금합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혼자 아이들을 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셋이서 정말 많이 다녔어요. 걱정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멀리까지도 잘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비교적 교육적인 부분을 너무 소홀히 하나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지금은 최대한 자연에서 많은 영감과 양분을 얻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실 시골의 소학교도 많이 알아보는 중에 있고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자연과 친해지겠어요? 그리고 적은 수의 친구들과 더 깊게 관계를 맺는 경험도 너무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런 감성과 가치관을 키워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판권 페이지에 지호의 블루베리가 나오던데, 2편의 예고인가요? 앞으로 작가님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 차기작 블루베리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희 집 거실이 스튜디오가 되어 지호와 함께 촬영하고 있죠. 지구는 스텝으로 도와주고요! 이번 이야기는 상상 장면이 많아서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보는 중에 있어요. 그리고 이번 작품은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협업의 힘을 느끼며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업의 시간이 쌓이면서, 사진책과 그림책, 그리고 사진 그림책에 대한 장르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사진 그림책에 대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그 밖에는 해외 도서관에서도 강의 컨택이 있어서 준비 중이고요, 연말에 잡힌 공간 디자인 일도 해야 하네요!
바쁘게 살아가는 엄마들의 시간도 '빨간 사과처럼 익어가는,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가 있을까요?
육아를 하며, 어쩌다 보니 잊고 지내는 나의 것들이 있죠. 가끔씩 떠올리며 그리워하지만, 한편으로 덕분에 원래의 내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움직’여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를 위해 움직여서 실행하고 안 하고의 차이를 경험해 보시길 바라요. 움직이다 보면 더 많은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빨간 사과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빨간 사과는 ‘과정’ 이예요. 어쩌면 계속 이렇게 ‘익어가는 중’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요. 제 삶을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에 참 감사하고 저에게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희 작가님이 추천하는
아이랑 읽는 성장 그림책 3권

봄은 또 오고
제가 주변에 책 선물을 할 일이 있을 때 꼭 하는 책인데, 일단 책이 너무너무 예쁩니다. 프랑스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가 책의 물성을 십분 활용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봄날의 기억이 쌓이듯 표현한 책이에요. 성장하면서 지워지는 기억, 새로 채워지는 일들이 책 속의 잘려나간 종이들과 연결돼 새롭게 읽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자기 나이대의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페이지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어떤 인생의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감정의 경험이 다 다를 것 같습니다.

두 마리의 작은 곰
사진작가 일라의 사진 그림책이에요. 픽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작가가 아기곰 두 마리와 연출을 하며 만든 작품이죠. 아기곰들과 한 장면 한 장면 어떻게 촬영했는지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아요. 귀여운 아기곰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재밌게 볼 것 같고, 역사적인 동물 연출 사진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말 (당신이 간직한, 그 모든 말들)
말에 대한 시각적 은유를 담은, 다소 실험적인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른들이 읽을 것 같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는데 9살 지구가 이 책을 읽고 공감을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지구가 ‘삼켜버린 말’을 표현한 부분에서 ‘나도 그런 적이 많아’라고 하더라고요.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 건 알았지만, 한 번 더 아이 생각을 살펴보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와 읽으면서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빨라도, 느려도 괜찮아요
<빨간 사과가 먹고싶다면> 사진그림 작가 가희
‘2025 이탈리아 볼로냐 라가치상’의 <오페라 프리마 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그림책,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은 스티커에서도 소개해 드린 적이 있죠. 이 그림책에는 서로 너무 다른 두 아이의 성장과 기다림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요. 책 속 주인공인 지구와 지호 두 아이들의 모습을 필름 카메라로 촬영한 장면들 때문에 엄마 미소가 절로 납니다.
아이들 사진을 직접 찍고 작업한 작가이자, 지구와 지호의 엄마인 가희님을 스티커가 만나보았어요. 첫 그림책으로 큰 상을 수상하게 된 이야기부터, 그녀의 일과 육아 그리고 아이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작업 이야기까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9살 지구와 8살 지호, 두 아이의 엄마이고, 인스타 초창기 시절부터 @jiguho_lee에 저의 일과 아이들 일상 사진들을 꾸준히 기록해오고 있는 이가희입니다. 지금은 공간 디자인 일과 그림책 작업을 주로 하고 있어요.
어떻게 ‘사진그림 작가’가 되었나요?
서양화를 전공하고 디자인 회사에 다니다가 지구, 지호를 낳고 퇴사를 했어요. 근데 아마도 저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좀 힘든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나만의 공간’을 직접 스타일링하고 그 사진들을 sns에도 올리고 그랬거든요. 그 사진들을 보고 처음에는 작은 작업이 들어오다가 점점 늘어나서, 제대로 사업자를 내고 배우기도 하면서 공간 디자인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사진그림 작업은 2023년도부터 시작했는데, 저의 사진 기록을 좋게 보신 작가 진주 님과 인연이 돼 하게 된 거죠. 그 첫 작업이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이에요.
첫 그림책으로, 볼로냐 라가치상의 오페라 프리마 부분에서 무려 대상을 수상했어요!
사실 저는 이게 얼마나 크고 대단한 상인지 몰랐어요. 수상 발표 직후엔 정말 얼떨떨했죠. 너무 현실감이 없었다가 많은 축하를 받고 수상 이후로 정말 바빠지면서 실감을 하게 되었습니다. (볼로냐 라가치상은 권위 있는 글로벌 어린이 도서 어워드입니다. 픽션, 논픽션, 뉴 호라이즌, 오페라 프리마 4개 부분으로 시상하는데요 ‘오페라 프리마’는 올해의 신인상이에요.)
2025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식과 현지 행사장에서의 순간들
사진 그림책이라는 장르가 특별해요. 어떤 식으로 작업하나요?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 ‘사진 그림책’의 시작은 진주 작가님의 기획과 글에서부터 시작됐어요. 저의 첫 사진 그림 작업이고요. ‘사진 그림책’이라는 장르에 들어가는 그림책의 모습은 다양해요. 카메라가 도구가 되는 사진 그림책이 있고, 사진을 매체로서 보여주는 사진 그림책이 있어요.
‘저의 사진 그림책’은 사진 자체로서 완성도 있는 이미지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어요. 그래서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은 모두 사진으로만 이루어져 있죠. 연출부터 촬영, 디자인까지. 두 아들 지구, 지호와 함께 한 작업이에요. 회화성이 강한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고, 아이들과 교감을 하며 한 컷 한 컷 천천히 촬영을 했고요. 직접 큰 색종이를 오려서 공간 속에 꼴라주처럼 연출을 한 뒤 마지막에 셔터를 눌러요. 그것이 현실과 픽션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으로 타이포그래피도 시도해보며 저만의 그림을 만들어 나갔죠.
두 아이의 일상을 필름 카메라로 오랜 기간 담아 왔는데요, 그 꾸준함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음, 원동력부터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는 것의 힘'인 것 같아요. 사실 사진은 아이들을 만나기 훨씬 전, 저의 20대 때부터 저와 늘 함께 했던 거예요. 서양화를 그릴 때도 사진을 찍으며 작업했고, 디자인 회사나 공간스타일링 작업을 할 때도. 육아를 하면서는 자연스럽게 일상 속 아이들이 피사체가 되었고요. 캐논, 라이카, 휴대폰 카메라를 늘 곁에 두었어요. 돌아보면, 힘들었던 육아 시기를 제가 좋아하는 사진으로 해소했던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는 좋아하는 것을 계속했더니 그게 기록이 되고, 일로도 연결되었네요.
꾸준히 SNS에 기록해 온 육아, 공간, 작업 사진들 @jiguho_lee
수상 이후 북토크, 강의, 인터뷰, 전시회 등으로 일상에도 큰 변화가 있었죠?
수상 이후에 스케줄이 꽉 찰 정도로 바쁘게 지내고 있긴 합니다. 한 권의 책으로 내가 이렇게 여러 기관에서 강의도 하고 인터뷰도 하는 게 맞나 싶어서 다음 그림책 작업을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리고 요즘 라이카 아카데미에서 사진 크리틱 수업을 듣고 있어요.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의 사진들이 사진 자체로서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더라고요. 또 그림책은 책의 물성을 적극 활용하는 장르이기 때문에, 책 만듦새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내가 원하는 이미지를 완성된 책으로 까지 가져올 수 있도록, 북 아트에 대한 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일상 사진과 달리, 작가로서 아이들과 사진 작업을 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진주작가님의 이야기 기획은 2022년이었고요. 저의 사진그림 기획은 2023년 5월부터 시작했어요. 마지막 촬영까지 1년 반 정도 걸렸죠. 처음 원고를 받고 읽어보는데, 그림이 없는 상태임에도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웃더라고요. 거기서 『빨간 사과가 먹고 싶다면』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들었고, 서로를 믿으면서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촬영장소가 저의 외가인 ‘경남 사천’이어서 아이들 방학 때를 활용해 한 번 내려가면 많이 촬영하는 식으로, 총 세 번 정도 내려갔어요. 인천에서 경남으로 가는 차 안에서 촬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줬고, 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촬영 후 보상에 대한 약속도 확실히 하고 갔죠.
내 아이들과의 책 사진 작업이라, 의미 있고 즐겁고 그런데 어려운, 그런 거죠?
저는 계획적인 사람이 아니라 그럴까요, 촬영을 하기 위해 일단 30%만 준비해서 내려갔어요. 도착해 보니, 시골 마당에 원래는 사과나무가 없었지만, 사과나무를 어찌어찌 구해서 가족들과 함께 반나절을 심으며 시작했고요. 다행이었던 것은, 엄마의 사진 찍는 모습이 익숙해서인지 아이들이 촬영을 어색해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와, 너무 잘하는데? 어쩌면 그렇게 연기를 잘해 지호야?’ 이렇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계속 리액션해 주고 소통을 하면서 촬영했던 것 같아요. 참, 촬영 기간이 2023년도 여름과 2024년도 여름이었는데요, 1년 새 아이들이 자라서 옷이 잘 안 맞는 거예요. 그때 당황했던 기억이 나네요. 하하.
육아를 하는 과정 자체가 일에 영감이 되었네요.
이야기를 어떻게 더 자연스럽게 표현할지에 대해 종종 아이들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작업 중인 작품에 ‘힘이 센 블루베리’ 이미지를 표현할 땐 지호가 좋아하는 핑크색 울퉁불퉁한 패딩이 떠올랐어요. 그 옷을 입으면 몸집이 큰 근육맨의 이미지가 귀엽게 그려져요. 또 지호가 좋아하는 스파이더맨 필통이라던가 로봇 같은 소품이 자연스럽게 들어가게 되고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호의 스토리도 담기고요. 아이들과의 시간이 자연스럽게 영감이 되죠.
그림책 속 지구는 주변을 살피느라 행동이 느리죠. 반대로 지호는 재빠르죠. 지구의 모습은 주변을 늘 살피고 때를 기다려야 하는 엄마들의 모습과 비슷해요.
저는 사실, 지구보다 지호에 가까운 엄마인 것 같아요. 저는 육아를 할 때도 최대한 도움받을 일이 있으면 가족이나 주변의 도움을 받았거든요. 제가 힘들어지면 제 마음의 화나 슬픔이 다시 아이들이나 주변에 전달이 되잖아요. 때때로 육아나 교육에 관심이 부족한 엄마인가 하고 죄책감이 든 적도 있었죠. 하지만 책 속에서 서로 다른 두 아이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기다리고 성장하듯, 엄마의 모습도 꼭 이래야 한다는 것은 없는 것 같아요. 전 힘들면 도움을 받거나 최대한 방법을 찾아서 멘탈을 지키는 지호 같은 엄마이지만. 지구 같은 엄마도 있고 지호 같은 엄마도 있는 거죠.
일상 루틴이나 시간 관리 노하우를 공유한다면요?
크게 특별한 건 없지만요. 육아는 최대한 효율적이고 단순하게 하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 아침밥은 통밀 빵에 달걀과 사과, 토마토주스로 루틴 화해서 고민을 줄이면서도 건강한 습관을 들이려 하고요. 아이들 등교 후부터 4시까지 웬만한 모든 일을 처리하려고 해요. 저녁에도 일을 해야 하면, 아이들과 자전거를 타고 집 근처 북카페에 가서 아이들은 책 읽고 저는 일하고. 배고프면 옆 가게 콩나물국밥도 종종 사 먹고요.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이에요.
공간 스타일링, 브랜딩 디자인 등 다양한 사진 작업들
작가님의 육아관이 궁금합니다.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혼자 아이들을 봐야 하는 상황에서도 셋이서 정말 많이 다녔어요. 걱정을 잘 안 하는 성격이라 멀리까지도 잘 돌아다녔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비교적 교육적인 부분을 너무 소홀히 하나 싶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지금은 최대한 자연에서 많은 영감과 양분을 얻어야 하는 때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실 시골의 소학교도 많이 알아보는 중에 있고요.
이때가 아니면 언제 자연과 친해지겠어요? 그리고 적은 수의 친구들과 더 깊게 관계를 맺는 경험도 너무 좋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그런 감성과 가치관을 키워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판권 페이지에 지호의 블루베리가 나오던데, 2편의 예고인가요? 앞으로 작가님의 행보가 궁금해집니다.
네 맞습니다. 지금 차기작 블루베리에 대한 작업을 하고 있어요. 저희 집 거실이 스튜디오가 되어 지호와 함께 촬영하고 있죠. 지구는 스텝으로 도와주고요! 이번 이야기는 상상 장면이 많아서 환상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보는 중에 있어요.
그리고 이번 작품은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협업의 힘을 느끼며 성장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작업의 시간이 쌓이면서, 사진책과 그림책, 그리고 사진 그림책에 대한 장르들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어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사진 그림책에 대한 장르에 관심을 가지고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가고 싶다는 꿈을 꿉니다. 그 밖에는 해외 도서관에서도 강의 컨택이 있어서 준비 중이고요, 연말에 잡힌 공간 디자인 일도 해야 하네요!
바쁘게 살아가는 엄마들의 시간도 '빨간 사과처럼 익어가는, 기다림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들에게 해주고 싶은 응원의 메시지가 있을까요?
육아를 하며, 어쩌다 보니 잊고 지내는 나의 것들이 있죠. 가끔씩 떠올리며 그리워하지만, 한편으로 덕분에 원래의 내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생겼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것이 무엇이든 일단 ‘움직’여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나를 위해 움직여서 실행하고 안 하고의 차이를 경험해 보시길 바라요. 움직이다 보면 더 많은 신나는 일들이 벌어지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작가님의 빨간 사과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의 빨간 사과는 ‘과정’ 이예요. 어쩌면 계속 이렇게 ‘익어가는 중’이고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좋아하는 것을 하는 거요. 제 삶을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움에 참 감사하고 저에게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희 작가님이 추천하는
아이랑 읽는 성장 그림책 3권

봄은 또 오고
제가 주변에 책 선물을 할 일이 있을 때 꼭 하는 책인데, 일단 책이 너무너무 예쁩니다. 프랑스 작가 ‘아드리앵 파를랑주’가 책의 물성을 십분 활용해서 한 사람의 인생을 봄날의 기억이 쌓이듯 표현한 책이에요. 성장하면서 지워지는 기억, 새로 채워지는 일들이 책 속의 잘려나간 종이들과 연결돼 새롭게 읽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은 자기 나이대의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페이지에 관심을 가지더라고요. 어떤 인생의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감정의 경험이 다 다를 것 같습니다.

두 마리의 작은 곰
사진작가 일라의 사진 그림책이에요. 픽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작가가 아기곰 두 마리와 연출을 하며 만든 작품이죠. 아기곰들과 한 장면 한 장면 어떻게 촬영했는지 너무 신기하고 아름다운 장면들이 많아요. 귀여운 아기곰들의 모습을 아이들이 재밌게 볼 것 같고, 역사적인 동물 연출 사진 그림책이기도 합니다. 
말 (당신이 간직한, 그 모든 말들)
말에 대한 시각적 은유를 담은, 다소 실험적인 그림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어른들이 읽을 것 같은 그림책이라고 생각했는데 9살 지구가 이 책을 읽고 공감을 해서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지구가 ‘삼켜버린 말’을 표현한 부분에서 ‘나도 그런 적이 많아’라고 하더라고요. 여린 마음을 가진 아이라는 건 알았지만, 한 번 더 아이 생각을 살펴보게 되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 그림책은 아이와 읽으면서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