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시작해요

그 다음 애쓰면 돼요


스튜디오 얀 대표 이지혜









많은 엄마들이 일을 관두거나 잠시 멈추는 타이밍이 딱 두 지점 있어요. 바로 출산과 초등학교 입학이죠. 요즘 스카프를 만드느라 종횡무진 정신이 없는 스튜디오얀이지혜님은 올해 ‘초등맘’이라는 직함(?)을 새로 얻었어요. 출산과 동시에 13년 다닌 항공사를 그만두고 새 일을 시작하기까지 6년. 그 시간을 어떻게 숙성했길래 남들은 많이들 일을 그만두는 시기에 그녀는 브랜드 런칭이라는 해본 적도 없는 일에 도전하게 된걸까요. 자신의 일을 찾고, 스스로 개척해나간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안녕하세요. 스티커 마미들에게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STUDIO YARN을 운영하고 있는 이지혜 입니다. 인스타에서는 @oink_j로 알려져 있어요. 초1 아들 엄마이고, 아내이며, 스카프를 만들고 있습니다. 브랜드를 론칭하고 멋진 분들로부터 생각지도 못한 많은 사랑을 받아 기쁘기도 하지만 늘 떨리는 마음으로 일하는 워킹맘입니다.

브랜드를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결혼 전에 항공사 승무원이었어요. 정년까지 다닐 줄 알았는데 결혼과 동시에 머나먼 부산으로 이사하면서 13년 간 몸 담은 회사를 관두게 되었죠. 사실 그 결심은 쉽지 않았어요. 마지막 출근 날 눈물 콧물 범벅이 되도록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요. 이후 5년을 생면부지 타지에서 육아하며 가정주부로 살면서 뾰족한 계획은 없었지만, 언젠가 꼭 ‘내 일’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 만은 굳게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시 일을 시작하겠어!' 결심을 하고 바라보니 경단녀의 벨트는 참 두텁더라고요. 일을 오래 쉬다 보니 뭔가 새로운 걸 시작하는데 용기가 많이 필요했어요. 아이가 크는 동안 오랜 시간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과 타인이 나한테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일들을 한데 모아두고, 그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요. 그리고 그 고민의 결과가 지금의 STUDIO YARN이 되었어요.

스튜디오얀에 대해 좀 더 소개해주세요.

스튜디오얀은 몇 가지 패션 아이템들을 전개하고 있는데 메인은 ‘스카프’에요. 제 지인들은 다 알지만 전 스무살 때부터 스카프 광이었거든요. 20대 땐 뭐 목에 두르고, 팔에 두르고, 머리에 두르고 아주 공격적으로 둘렀었죠. 아이를 낳고선 아기띠에, 유모차에도 두르고 다녔고요. 인스타에서 제 취향과 비슷한 분들이 많이 팔로우해주셨고, 덕분에 스튜디오얀도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스튜디오얀은 ‘WIT RESTRUCTURES AN ORDINARY THING’이라는 브랜드 모토를 갖고 있어요. 간결함 속에서도 재미가 느껴져야 한다는 정신이죠! 전 스카프 한 장이 항상 웃고 떠들며 늘 곁을 지키는 오랜 친구 같은 존재이길 바라요. 친구랑 있으면 어쩐지 평소보다 더 용감해지잖아요. 편하고 나를 용기 나게 해주는 그런 존재요. 그런 한 피스의 스카프를 만들어내기 위해 위트 있는 일러스트와 컬러 한 방울까지 깊이깊이 고민하는 브랜드입니다. 


스카프에 들어가는 일러스트는 직접 그리시나요?

오, 아니에요. 스카프에 들어가는 삽화는 모두 해외에 있는 프로 일러스트레이터들과 작업하고 있어요. 저는 스카프의 주제를 찾고, 스토리를 입히고, 한 장의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작가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고 조율하는 역할을 하죠. 아, 제가 직접 스케치하는 부분이 있다면 입체 글씨 그림이에요. 스카프의 주제는 항상 한가운데 커다란 글씨로 표현하거든요. 


사실 이건 제 지독한 취미에서 시작된 건데, 이 손글씨가 관심을 받아 책으로 나오기도 했었죠. 항공사 승무원 시절 도착하는 도시마다 손글씨로 도시 이름을 그려 사진으로 찍었었거든요. 가뜩이나 챙길 게 많았던 제 비행 트렁크에 묵직하게 자리하고 있던 문구류를 바라볼 때마다 ‘이 행위를 멈출 수는 없지만, 내가 이걸 어디에 쓰겠다고 이 고생을 하지’? 생각했던 순간이 있었어요. 그때의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세상에 의미 없는 일은 없어. 지금은 세상 쓸데없는 일 같아도 있어봐 너 이걸로 경력단절 탈출해.

인맥도 없이 해외에 있는 작가들과 작업하며 어려움은 없으신가요? 스카프 한 장이 탄생하기까지 과정이 궁금해요.

모든 일이 ‘인맥프리’의 온라인 기반으로 시작됐기 때문에, 구글링 해서 열심히 찾은 작가에게 무식하게 들이대보는 방법 밖에 없었어요. 답장을 못 받는 경우도 많았죠. 그러다 뜻이 통하는 작가와 컨텍이 되면 “YES” 메일을 받기도 했어요. 지금 저희의 메인 작가인 Maxim Usik 씨는 세계를 돌아다니며 작업하는 친구인데요, 이 친구와 주고받은 메일이 약 300통 정도 쌓이니 한 장의 귀한 삽화 하나가 완성되었습니다. 


평생을 한국에서 살아온 여자애가 온 세계를 동네마실처럼 다니는 외국 남자와 협업을 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더라고요. 정서를 맞추고 문화를 이해하는 일, 그림 속 스토리에서 짙게 묻어나는 이국적인 감성에 심장이 나대던 일. 와 진짜 어렵고도 흥미진진했어요. 그런데 색을 입히기 시작하면서 우리 둘은 삐걱댔죠. 각자 자신의 컬러를 주장하기 시작하는데 저는 제 고집이 이렇게 센 줄 몰랐어요. 급기야 아티스트가 “너랑 작업 못해” 선언을 했던 날, 무릎을 꿇고 앉아 사과의 이메일을 쓰며 남편에게 물었습니다. 


👩🏻: "간당간당하다, 나도 내가 사고칠 줄 알았다. 가 영어로 뭐야?"


끈질긴 밀당의 시간이 오갔지만 우리 사이는 지금 아주 좋아요. 새로운 삽화를 그리는 요즘, 그는 컬러 작업이 시작되자마자 연락두절 상태지만 말이죠.


우리의 삶이란 여간해선 영감 받기 어려운 바쁨의 연속이잖아요. 대체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스카프의 주제는 일상에서 찾으려 노력해요. 일기로 썼던 몇 줄의 글이 스카프의 주제가 되기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부산의 요트 경기장 바닥 타일에서 힌트를 얻기도 하고, 옛날 영화에서 영감을 받기도 합니다. 스튜디오얀의 두 번째 스카프 는 아들의 그림책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때가 새해를 바라보던 시즌이었는데, 뭔가 우리들의 ‘WISH’를 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어렴풋이 했었어요.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하던 어느 날, 그날 밤도 어김없이 아들에게 책을 읽어주었죠. 럭셔리한 잉어 ‘WISH FISH’가 어부 프레드에게 붙잡혀 바둥거리며 딜을 하는 옛날 영어 그림책. “어부 프레드님 나를 풀어주면 세 가지 소원을 들어 드릴게요. SPLISH SPLASH WISH!🪄” 그 순간 입에 착 붙는 그 마법의 문장이 제 마음을 쿵쿵 치며 ‘이거야 이걸로 해!!!’ 외쳐댔죠. 일상이 온통 영감이에요.

아들이 일곱 살 때 브랜드를 론칭 하셨네요. 보통은 아이 학교 입학을 앞두고 일을 잠시 멈추기도 하잖아요.

정확히는 아들이 여섯 살 가을이었어요. 이유는 딱 한 가지 입니다. 여덟 살이 아니었으니까요. 일을 시작해 볼까 한다는 저의 이야기를 듣고 지인이 했던 한마디가 생각나요. 너는 본디 생각이 많고 인터벌이 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면 안된다. 어영부영 하다가 아이가 여덟 살이 되면 너는 지금 생각하는 그 일을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미뤄야 할 것. 여덟살 이후 육아엔 안 바쁜 순간이 없다면서요. 


아찔했어요. 그래서 일단 무작정 시작했죠. 그리고 그때그때 닥치는 어려움을 정면돌파 하고 있는데 정말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어요. 어떤 날은 정신이 없어 아들의 간식통과 물통을 씻지도 않은 채로 등원 시켜서 자괴감이 든 날도 있었죠. 입학 전에는 온갖 걱정들에 괜히 그 작은 등짝만 봐도 눈물이 고였었고요.근데 아이는 제가 걱정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잘하더라고요. 저도 초반엔 썰물처럼 밀려오는 일과 육아, 가사 사이에서 허덕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처음보다는 아주 조금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아이도 저도 각자 성장해가고 있는 시기인거죠.


일과 육아의 밸런스를 맞추는 시간 관리 노하우가 있으신가요.

정말 저도 너무 궁금한 영역입니다. 그래도 막 시작한 저와 지금의 저를 비교해 봤을 때 가장 달라진 것은 레버리지 능력이에요. 뭐든지 내 손을 거쳐야 일이 진행된다는 강박관념을 조금 버렸거든요. 한계를 알고 내가 못하는 일은 재빠르게 인정하는 거죠. 아직도 나눠주고 믿어줘야 할 일의 영역이 많은데, 자꾸자꾸 그 분량을 늘려가려고 해요. 최근 아이의 저녁 스케줄을 남편에게 맡기기 시작했는데, 너무나 홀가분합니다. 저쪽 방 한편에서는 오늘도 학원 숙제로 큰소리가 나지만요. 


또 ‘초등맘’이라는 직함(?)이 추가된 뒤로 생긴 또 하나의 복병이 있는데 바로 방학이에요. 초등학교의 방학은 정말 어마어마하더라고요. 그래서 방학을 아이와 함께하는 제 해외 출장 기간으로 만들어 버렸어요. 지난 여름방학 땐 보스턴에서 써머캠프를 보냈는데, 저는 아이가 수업에 들어간 틈틈이 시장조사와 샘플 찾기, 영감을 줍줍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겨울방학은 2개월이라면서요? 벌써 두렵습니다. 또 계획을 세워봐야죠. 



부산에 살고 계시잖아요.  온라인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세상이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부산에서 브랜드를 운영하시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문득문득 놀랄 때가 있어요. 저희 작가들이나 제작 업체들은 전 세계에 퍼져 있잖아요. 이탈리아, 핀란드, 프랑스, 미국에서 날아드는 메일을 읽고 또 답장을 하고 있으면 여기가 부산이 맞나 싶을 때가 있거든요. 일은 차질 없이 진행되어 가요. 경계가 허물어지고 형식이 사라지면서 정말 새로운 세상이 열렸구나 온몸으로 느껴요. 저희 메인 작가인 Maxim Usik은 노트북 한 권 들고 세계를 집으로 삼지만 언제나 빛의 속도로 피드백이 와요. 세이셸에서, 발리에서, 런던에서, 뉴델리에서요. 장소의 한계란 없는 것 같아요. 단, 요즘의 서울은 정말 재밌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그 서울을 속속들이 누리지 못하는 아쉬움은 나날이 커져만 갑니다. 또 모르죠. 훌쩍 이사를 가게 될 지도요.

스튜디오얀을 운영하며 기뻤던 순간 세 가지를 꼽는다면요?

첫 번째는 당연히 첫 스카프가 세상에 나왔던 순간이에요. 만년 대리가 초고속 승진을 셀프로 삼아 사장님이 되었으니 얼마나 실수투성이에 초 긴장의 연속이었겠어요. 밤을 꼬박 새우고 시퍼런 새벽을 맞이한 날들이 수 없이 쌓여 첫 스카프가 공개되었을 때. 생각지도 못한 순삭 품절도 물론 기뻤지만 제가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걸 지지하고 응원하는 댓글들에 너무 감사하고 기뻤어요. 그때 받은 댓글들은 다 캡처해 놓고 가끔 마음이 쪼그라들거나 너무 지칠 때 멜라토닌처럼 꺼내 먹어요. 


두 번째는 사무실을 구했을 때요. 남편의 그 출퇴근 길을 너무나 부러워했거든요. 차 안에서 자기만의 주크박스에 흠뻑 빠져드는 남편의 낭만을 시기질투 하다가 저도 드디어 꿈을 이룬 거죠. 지금 제 사무실은 달맞이길에 있는데요, 엎어지면 집과 코 닿을 거리라 플레이리스트를 채우려 일부러 천천히 운전해요. 일하는 엄마들에겐 꼭 이런 공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집이라고 할지라도 눈에 들어오는 집안 일과 차단되는 나만의 공간이요. 


세 번째는 제가 만든 스카프가 전국각지, 세계 곳곳에 가서 열일하고 있는 후기를 받아보았을 때에요. 누군가의 따스함이 되기도 하고, 자신감이 되기도 하고, 셀프 선물이 되기도 하는 우리 스카프들의 근황을 받아 들면 그렇게 뿌듯하고 기쁠 수가 없어요.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은요? 

힘들었던 순간들이야 셀 수 없이 많았고 지금도 너무 많아요. 모든 게 처음이고 해 본 적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초보 사장에겐 엑셀로 송장하나 뽑는 것조차 어려웠죠. 이대리, 이과장, 이차장, 이부장 모두 실은 저 한 명, 이름하야 1인 기업의 고군분투였습니다. 첫 패킹 때가 생각나네요. 너무 다급해서 엄마에게 SOS를 쳤더니 아무것도 모르고 내려온 엄마가 “아이고 사람 구해라”라고 하는데, 사람은 어디서 구해야 하는지도 몰랐으니 말 다했죠. 기적적으로 베테랑 여사님들을 구해 패킹을 착착 해결해 주시는데 “언니야 우리는 딸 안 낳길 잘했다 그쟈” 하는 말에 ‘나는 딸이 없어 너무 다행이다’ 싶을 정도였으니. 손 많이 가는 딸을 둔 엄마의 뒷모습이 짠한 순간이었어요. 


또 아들의 하원시간 전에 신데렐라처럼 돌아가야 해서 늘 시간에 쫓기는 건 일상이고요. 할 일은 아직 산더미인데 사무실에 노을이 채 내려앉기 전에 차에 시동을 걸고 달려야죠. 국제적 어려움도 늘 도사리고 있어요. 예를 들면 저랑 밀당하던 일러스트레이터가 갑자기 냉담한 반응을 보인다거나, 국제 배송이 지연되어 고객님들께 사과문을 올린다거나, 제조사에 결제할 때 일주일새 환율 급등으로 숫자가 헉 소리 나게 바뀐다거나요.

새로운 일을 찾는데 용기를 못 내는 엄마들이 많은데요. 그런 스티커의 엄마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한마디는요?

제가 처음 스튜디오얀을 시작할 때 그랬어요. 매일매일 걱정과 어려움이 불쑥불쑥 두더지게임처럼 머리를 내민다고요. 오늘도 아니 지금 이 순간에도 해결해야 할 어려움의 두더지들이 한데 모여 목청을 높이고 있어요. 끝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은. 근데, 그럼 그때마다 망치로 톡톡 때려서 넣어버리면 돼요. 스튜디오얀을 운영하며 한 가지 배운 게 있다면, 끊임없이 생각하고 애를 쓰고 있으면 그것은 어느 순간 해결되도록 되어 있다는 거예요. 상황이 해결되든지, 저의 생각의 방향이 바뀌든지요. 하지만 포기는 안되죠. 붙들고 애는 써봐야 해요. 용기를 내세요. 어쨌든 시작을 해야 애를 써보든 말든 하죠. 처음부터 완벽할 순 없어요. 일단 시작하고, 밀려드는 어려움을 하나씩 해결해 가며 조금씩 다듬어가면 돼요. 두더지 게임은 동전을 넣어야 시작됩니다. 일단 머리를 내밀면 그때 그때 그때 세게 내려치세요. 노하우는 내려치는 횟수만큼 쌓이는 것 같아요! 


앞으로의 계획은요?

일단 단기적으로는 이번 주 시작하는 팝업스토어를 잘 끝내는 거예요. 온라인으로 시작한 스튜디오얀의 첫 오프라인 데뷔예요. 같은 날 온라인에서는 캠페인이 열리는데요, 저희 실크로 만든 참 BLUETTE 판매 수익금으로 할아버지, 할머니와 단둘이 사는 어린이 가정을 돕는 일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프로젝트이니 잘 마무리하고 싶어요. 장기적으론 당연히 스카프죠. 스카프를 더 깊이 파볼 계획입니다. 하나의 작품으로 생각하고 만들었고 또 그렇게 대했기에 많은 분들 또한 STUDIO YARN의 삽화 한 장 한 장을 의미 있게 생각해 주시는 것 같아요. 언젠가 좋은 계절에 작가분들을 초대해 놓고 전시 형식의 의미 있는 행사를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 구상 중입니다. 꼭 와주세요.

스티커의 공식 질문입니다. 쑥쑥 자라  70대가 되면 어떤 할머니가 되고 싶으세요?

변화에 능숙하고 유연한 할머니요. 많은 게 예전 같지 않음에 슬퍼할게 아니라, 나름의 루틴과 나름의 설렘을 챙기며 나름대로 월화수목금토일 즐거운 할머니로 살아가고 있길 그려봅니다. 물론, 그때도 저는 짝꿍 같은 스카프를 두르고 있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