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육아의 균형에 진심

그림책 작가 아네테 멜레세






인터뷰, 글 _최현주 (스티커 객원 에디터)



“육아에 꼭 필요한 건 유머죠!”

바쁘고 정신 없지만, 행복하기 위해 매 순간 노력하고, 나만의 일을 놓지 않으려는 ‘저 먼 나라 라트비아의 엄마 그림책 작가’ 아네네 멜레세. 그녀의 책 <키오스크>와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 속엔 엄마의 자아발견과 성장이야기가 숨겨져 있어요. 그래서인가 전 세계 어디라도 엄마는 다 나와 같구나, 싶어 안도감(?)과 위로까지 받게 됩니다. 그녀가 한국에 왔고, 스티커가 만났어요. 그녀에게 ‘스티커 엄마와 나눌 그림책 속 엄마메시지’를 꼽아달라고 했죠. 우리가 몰랐던 우리의 이야기. 함께 볼래요?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저는 라트비아에서 온 애니메이터이자 그림책 작가 아네테 멜레세예요. 6세 딸 스텔라와 20개월 아들 마리스 두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라트비아 그림책 원화전 오픈 기념으로 한국을 찾아왔어요. 작년 이맘때 왔었고,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에요.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 

딸 스텔라, 옆방에서 일하는 엄마, 엄마 대신 딸을 재우려는 아빠. 그런데 사라진 스텔라의 단잠. 밤시간, 어느 가정에나 있을법한 이야기. 볼로냐 라가치상 The Braw Amazing Bookshelf 선정 

작가님 책은 찐엄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엄마 독자의 관점에서 인상 깊었던 건 최근작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 첫 장면이었어요. 몸은 아이에게 있지만 눈은 작업실로 향하고 있는데, 엄마의 표정은 행복해 보였거든요.

맞아요. 제가 표현하고자 했던 부분이에요. 첫 장면이 전체 이야기의 핵심을 담고 있어요. 일을 하고 있는 동시에 육아를 하는 장면이에요. 일과 육아의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하고 애쓰는 저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엄마들은 일과 육아를 분리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작가님은 완벽하게 분리가 되나요? 노하우가 있다면요?

저도 일과 육아의 양립은 어려워요. 아직도 잘 해내가기 위한 과정에 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저는 작업을 위한 스튜디오가 별도로 있어요.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선 물리적으로 분리된 공간을 꼭 마련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가끔 작업을 마무리하지 못하면 집으로 일을 가지고 오기도 해요. 그럴 땐 아이들이 자는 시간을 이용하는데요. 아이가 1명일 때는 어느 정도 작업이 가능했지만, 둘이 되고부터는 그것도 힘들어지더라고요. 지금 이렇게 한국에 와서 오랜 기간 동안 아이와 떨어져 있는 이 상황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감정을 버리고, 다시 가족에게 돌아갔을 때 아이들과 함께하려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할 거예요.


라트비아의 가정 내 육아는 부부간의 양립이 잘 되는 편인가요? 

남편과 정확하게 50대 50으로 나눠서 양육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와 스케줄을 공유하면서 서로를 배려하고 있어요. 위 장면을 보세요. 서로 배려하고 있음에도 피곤에 지쳐 쓰러진 엄마와, 아이를 재우지 못해 당황한 아빠의 표정... 육아가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보여주죠. 양육은 저와 남편에게도 매우 쉽지 않은 일이에요. 다만 그 상황을 재미있게 풀어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육아를 재미있게 풀어간다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예를 들면, 아침 준비 시간이 5분밖에 남지 않았을 때. 아이가 아직 파자마를 입고 있거나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지 않고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저는 이 상황을 차분히 바라보고 분위기를 전환하려고 노력해요. ‘빨리해’라고 재촉하기보다는 이 상황을 하나의 게임으로 만들죠. ‘누가 더 빨리 옷을 갈아입는지’ 같은 시합으로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에 담은 거예요. 어렵고 힘든 육아, 그 실체를 다르게 바라보고 재미있게 양육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자는 메시지를 담았죠.

<키오스크>

키오스크에서 사는 올가가 키오스크를 벗어나지 않고도 자신의 꿈을 이루는 과정. 각자의 키오스크 속에서도 꿈을 꾸고 또 이룰 수 있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2021 피터 팬 상 수상작.

이제, 작가님의 대표작 <키오스크> 이야기를 해볼게요. 주인공 올가는 하루종일 키오스크에 갇혀 바깥세상을 바라보기만 하죠. 전 이 책을 코로나 때 접해서 그랬는지 '키오스크'라는 존재를 아이와 갇힌 갑갑한 집으로 받아들였어요. 작가님에게 '키오스크'는 어떤 의미였는지 궁금해요.

말씀해 주신 것처럼 키오스크가 어떤 사람에게는 갑갑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을 거예요. 당시 제 상황에 빗대어볼게요. 당시 저는 반복되는 일을 계속했었고, 더 이상 커리어 발전이 없고 갇혀 있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하지만 그림책 속 주인공 올가는 키오스크를 통해서 바깥을 바라보고 더 넓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죠. 올가에게 그 키오스크는 일상이 반복되는 안온한 공간이면서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계기이기도 했겠죠.


엄마 입장에서 키오스크 안은 의식주 모두가 갖춰져 있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또 하나의 속박이라고 생각했어요. 올가는 꿈도 있고 의지도 있지만 떠나지는 못하는 엄마의 모습 같았거든요. 

그런 입장이 공감이 되기도 해요. 하지만 저는 올가가 키오스크 안에서 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도움을 주는 등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어요. 키오스크에 갇혀 있다고 생각하면 고립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제 그림 속 그녀는 그 안에서도 사람들과 다양하게 소통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실 수 있을 거예요. '내가 정체되어 있나?' 고민하는 엄마들도 알고 보면 사회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내고 있다는 걸 꼭 이야기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스티커 마미님들에게 단 5분이라도 본인만을 위한 시간을 가지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고정되어 있다고 생각한 키오스크를 스스로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올가처럼 마미님들도 새로운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막상 우뚝 서서 진취적인 행동을 하는 건 쉽지 않죠. 

제 친구는 가족여행을 다녀온 다음날은 온전히 혼자만의 휴식시간을 갖는다고 해요. 여행이 일상에서 벗어난 쉼이기는 하지만, 엄마들에게는 혼자만을 위한 시간이 꼭 필요하니까요.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무리하다 보면 결국 몸이 아파서 원치 않게 쉬게 되잖아요. 그렇게 아파서 쉬느니 스스로를 위한 휴식시간을 미리 계획하기를 권해요.

마지막으로, 스티커 마미님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장면이 있을까요?

<키오스크>의 마지막 장면을 추천해요. 주인공 올가가 꿈(여행)을 이룬 직후의 장면이죠. 꿈을 이뤘지만, 삶은 계속되고 또 다른 꿈을 키우며 현실을 살아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스티커 마미님들! 지금은 일, 가족, 나, 이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어렵겠지만 그래도 계속 시도하셔야 해요. 나의 꿈과 미래를 위해서요. 생각보다 빨리 아이들이 독립할 시기가 올 테니까요. 나중에 아이가 둥지를 벗어날 시기가 되었을 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뭐였지?' 라며 후회하지 않도록! 좋아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려는 노력을 하루에 5분씩이라도 끊임없이 해보자고요.



🙂 아네테 멜레세 한국 전시 정보


아네테 멜레세는 라트비아 출신으로 현재 스위스에서 살고 있어요. 한국 출간도서는 글그림 작업한 <키오스크>, <스텔라의 도둑맞은 잠>2권과 그림 작품 <완두콩이 데굴데굴>, <시간의 바지>, <왜 투표 안 해요?>, <왜 인사 안 해요?>, <구름책> 등이 있어요. 25년 2월 28일까지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안녕! 라트비아 그림책원화전]이 열리는데요, 아네테 멜레세 그림책 원화 35점을 만날 수 있어요. 


아네테 멜레세 팝업책방도 열려요. 11월 30일까지 종로구 원남동에 위치한 [쿨디가 서점]에서 진행된답니다. [쿨디가 서점] 통창에는 <완두콩이 데굴데굴> 책을 모티브로 한국팬들과 아네테가 함께 직접 드린 윈도우 페인팅 작품을 볼 수 있어요. 더불어, 팝업책방에서는 아네테 멜레세가 그린 mitten(뜨개장갑) 스탬프 아트와 워크숍도 진행되고 있어요. 자세한 일정은 [쿨디가 서점]인스타그램  @kuldigainseoul 을 참고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