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감이 두려움을 이기면

여행은 시작돼요


7세 딸과 단둘이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다녀온

리사 아빠, TRVR대표,  정승민 












유치원생 7세 딸아이 리사와 함께할 여름방학 여행을 계획한 남자. 그것도 남부 이탈리아로 낭만 가득한 길을 떠난 아빠가 있어요. 그는 낯선 밤마다, 아이를 재우고 나서 조금씩 글을 썼어요. 그 조각들이 엮여 풀리아의 물비늘처럼 찬란히 빛나는 책 한 권이 되었습니다.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 손바닥만한 사이즈의 이 200페이지 책은 가슴에 폭 안겨요. 딸과 보낸 그 시간을 잊지 않겠다,는 아빠의 마음이 본능적으로 느껴지죠.


이 아빠, 정체가 뭐냐고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RVR(타임리스 디자인을 표방하는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Traveler라는 의미)을 운영하는 정승민 대표입니다. 우리에겐 모델이자 배우인 장윤주와의 사랑스런 결혼이야기로도 알려진, 맞아요, 그분이에요. 

여행은 언제 다녀오신 거예요?

작년 7월이죠. 유치원생들 방학이 딱 정해져 있잖아요 7월 말, 열흘간. 딸 리사랑 이전에는 이렇게 먼 장거리 여행을 간 적이 없고, 엄마 없이 간 것도 처음이고요.


엄마 장윤주씨 없이 가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다들 유치원 방학 공지를 받으면 ‘이번 방학엔 어디로 가나?’ 걱정하잖아요. 저희도 마찬가지인데, 공교롭게 그 시기가 아내의 드라마, 영화 촬영과 겹쳤어요. 아쉽지만, 리사와 나, 이렇게 둘이 보내야 했죠.

“리사와 맞이하는 일곱 번째 여름. 

꽃들이 한바탕 지고 난 2023년 늦봄쯤이었나. 띠링.

리사가 다니는 유치원 애플리케이션에 알람이 울렸다. ……………. 

이왕이면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 중

둘만의 의미 있는 시간, 너무 아름답네요. 근데 남부 이탈리아는 어린아이와 가기 꽤 먼 곳이에요. 

아빠와 단둘이 떠나는 첫 여행.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즐거움이 무엇일지, 아빠로서 딸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면 좋을지 치열하게 고민했어요. 샌프란시스코는? 오키나와 바닷가? 발리? 그런데 딱 한 곳으로 결정하기엔 뭔가 끌림이 부족했어요. 그러다 영화 <리플리>에서 본 몇몇 장면이 떠올랐죠. 아름다운 풍경, 물놀이, 그리고 음식(피자와 파스타를 유독 좋아하는 리사)이 조화로운 곳. 해변 가까이 있는 어느 숙소에 머무르면서 언제든 바다에 뛰어들 복장을 하고 동네를 산책할 리사와 나의 모습이 그려졌어요. 



남부 이탈리아에서도, 풀리아는 생소해요. 

풀리아는 친구가 추천해주었고요, 아름다운 풍경에 반했습니다. 검색을 통해 풀리아에서도 모노폴리 Monopoli 라는 작은 도시에 머물게 되었어요. 작지만 아름다운 해변 도시죠. 항구도시인 이곳에는 해안가마다 가득한 어선들로 활기가 넘치고. 갓 잡은 해산물로 훌륭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레스토랑이 많아요. 

풀리아에 갔을 때 뭐가 가장 인상적이었나요?

바다하고 식재료요. 특히 눈으로 보는 식재료의 비주얼이 엄청나죠. 익히 알던 파스타가 아니에요. 사실 식재료가 좋으니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리고 언제든 뛰어들 수 있는 바다가 있다는 게 좋았어요. 그 두 개면 하루를 다 보낼 수 있었거든요. 


더위는요? 엄청났을 텐데요.

다행히 아이는 더위 스트레스를 덜 받더라고요. 어른과 달리 아이들은 뭐랄까요? 멘탈이 지배하는 영역이 더 큰 것 같아요. 어느 하나에 꽂히면 스트레스를 잊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치지 않더라고요. 


리사는 풀리아에서 뭐가 제일 좋았대요?

수영하고 먹는 거. 그리고 아빠랑 매일 같이 있는 거요. 

“과연 나는 리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어떤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걸까? 

먼저, 우리에게 주어진 지금 시간을 

정말 소중히 여기고 밀도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계절을 담아내는 그릇인 자연을 즐기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 


마지막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다양한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경험하고 느껴보고 

그것에 대해 자주 질문하라는 것……”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 중

책 속에 이런 글이 있더군요. 인천공항 가는 길, 택시 기사님이 여행가는 모자는 많이 봤는데, 부녀 손님은 처음 봤다고… 왜 흔치 않을까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엄마라는 존재가 아이하고 더 태생부터 가깝지 않나 싶어요. 아이는 엄마 배에서 자라잖아요. 요즘은 아빠들이, 아이들과 잘 놀아주고 시간도 많이 보내는 편인데. 그럼에도 그 기사님 말씀대로 장기 부녀 여행이 흔치 않은 건 그런 관계의 문제가 아닐까요. 엄마와의 태생적 친밀감 ….


책은 여행 시작 전 계획하신 건가요?

전혀 아니에요. 간혹 여행 단상을 SNS에 올리곤 했는데, 그걸 본 출판사 편집인이 연락을 해온 거죠. 


막상 책을 낸다는 결심, 어떻게 하게 된 걸까요?

이 책의 첫 번째 목적지는 리사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제 기억이 흐려질 거고, 리사는 더더군다나 어릴 때니까 기억을 잘 못할 테니, 이 어린 시간을 기억해 두고 싶었어요. 사실 아내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 리사를 위한 음악을 만들었었거든요. 두 번째는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여행 가이드가 아닌 ‘건강한 마음의 동요’, 그런 걸 주고 싶었어요. 


이 책의 첫 독자는, 그럼 리사인가요?

네. 리사죠. 근데 이 책을 받고 한 10초 지나니까 책꽂이에 꽂아두더라고요(웃음). 반전은 집에 오는 손님들마다 그 책을 다 선물해요. 막 자랑하고요. 몇 개월 전부턴 싸인 연습을 하더라고요. 


둘만의 여행을 하면서 깨달은 새로운 사실이 있나요?

아이와의 지냄은 늘 깨달음의 연속이잖아요. 이번 여행을 통해, 리사가 꽤 독립적으로 잘 살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길 찾고, 주문하는 걸 보고요. 전 아이와 놀면서 제 안에 있던 소년을 깨달았죠. 


"리사는 서울에서보다 더 밝고

더 야성적인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우리는 종종 가까운 거리를 맨발로 걸어 다녔는데, 

한낮에 강렬하게 쏟아지는 햇빛으로

한껏 데워진 길바닥 위를 총총 뛰어가

재빨리 바닷물에 발을 담그곤 했다 ”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 중

아이와 여행을 간다면, 꼭 챙겨 가야할 게 있을까요?

음……기록의 장치를 꼭 챙기면 좋겠어요. 펜이나 수첩, 카메라 같은. 아이는 스스로 기록하지 못하니 우리가 그것 만큼은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전에는 여행을 갈 때 수건까지 다 바리바리 챙겨 갔거든요. 근데 요즘에는 여권이랑 카드만 들고 가도 된다고 생각해요. 없으면 거기서 사면 되고요. 그래서 그런 물질적인 것보다는 기록의 장치를 챙기면 어떨까 싶어요. 그리고 트렁크는 좀 비워가는 게 좋겠어요. 추억의 물건들을 담아와야 하니까요. 


풀리아 여행 귀국 트렁크엔 어떤 추억을 담아 왔나요?

리사가 동네 옷집에서 원피스를 두 벌을 샀는데 그거하고 모자요. 그리고 모노폴리에서의 마지막 날, 바닷가에 쪼그려 앉아서 주운 돌이랑 조개를 소중히 담아왔습니다. 

막상 아이와 장기 여행을 간다고 하면, 두려움이 생겨요. 아이 안전을 챙겨야 하니까요. 

제 아내도 제일 걱정했던 게 그 부분이었어요. 하지만 여행이라는 게 안전한 곳에서 힐링하는 것도 좋지만, ‘내가 모르는 걸 발견’하는 기쁨도 참 큰 거잖아요. 두려움은 사람마다 경도가 다 다르긴 하지만요. 전 오지 여행을 좋아하는 모험가 스타일인데도 불구하고 이번엔 아이 안전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이더라고요. 근데 사람 사는 곳에는 의식주가 다 있으니까, 그 두려움 때문에 여행을 주저하는 건 좀 아쉽죠. 가면 더 큰 기쁨이 있다, 기대감을 부풀려라, 그게 여행 추진력 같아요. 기대감이 두려움을 이길 때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거니까요. 


둘만의 여행, 가족 여행 간의 차이가 뭘까요?

어떤 방식이든 여행만큼 가족이 단단해지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여행을 할 땐 분명히 두려움이 존재하는데 가족이 함께 가면 마치 삼각형에 기대고 있는 것처럼 든든하죠. 근데 둘만 여행을 하면 서로가 정말 가까워지는 것 같아요. 24시간 계속 붙어 있게 되는 거잖아요. 계속 옆에 있으니까 둘만의 비밀이 생기기도 하고요. 여행은 시간나면 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서울의 집을 나서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더랬다. 

'이 정도면 제법 훌륭한 아빠야!’ 

그러나 이 모든 마음은 너무 어리석었다. 

도리어 내 삶에서 절대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리사로 인해 경험할 수 있었고, 

리사로 인해 부모 된 자로서의 

충만한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 중

평소엔 어떤 아빠인가요? 

전 파이팅 넘치고 에너지 넘치는 아빠이고 싶어요. 주말에 함께 수영하면서 잠수 대결하고, 놀면서 수영을 익히게 하는 스타일인 거죠. 우린 평생 우리의 몸을 쓰면서, 운동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게 의무처럼 되면 너무 힘들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재미를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책을 읽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 많다는 걸 실제로 느끼게 하고 싶어요. 또 아빠로서 되새기는 마음가짐은, 리사는 나와 다른 인격체다, 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거예요. 최대한 저의 관점에 아이를 가두지 않으려고 하죠. 


어떤 부모이고 싶나요?

부모가 된 다음 가장 큰 깨달음이랄까… 그건 내 시간을 볼 수 있다는 거였어요. 얼마나 성장하는지 스스로는 못 보잖아요. 그런데 리사를 통해 제가 얼마나 성장하는지 알게 되었어요. 벌써 7살이 되었구나, 시간이 빨리 가는구나, 누워 있어도 시간은 가는구나. 그렇다면 난 시간을 잘 사용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해요. 리사가 늘 도전하며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도 부모 된 사람으로서 계속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해요. 


다음 여행지는요? 또 방학이 돌아왔어요!

가야죠. 목적지를 정하진 못 했어요. 국내 아름다운 곳을 갈까 싶기도 하고요.



<우리만의 사적인 아틀란티스>  글과 사진 정승민 / 세미콜론 / 가격 1만8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