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기는 엄마 아무도 못 이겨요
콘텐츠 크리에이터 키키
카이스트, 방송국 PD 출신의 14만 유튜브 크리에이터. 화려한 3단 타이틀에 혹했다가 저세상 텐션의 춤사위와 흡입력 갑 연기력, 아나운서 뺨치는 말재간의 인간적 매력에 폭 빠지게 되는 마성의 엄마가 있어요. 처음엔 화려하고도 남다른 이력에 호기심이 일었는데, 정작 콘텐츠를 보면 볼수록 이런 끼를 갖고 왜 카이스트를…? 질문이 완벽히 역전되더라고요.
매일 새벽 5시에 구독자들과 실시간으로 운동하고 아이돌 복사기 수준 댄싱머신으로 열일하는 엄마라니! 현실 세계 캐릭터 맞나요? 인생이 무료하고 꿈을 잃은 엄마들 주목하세요. 에너지 만땅(?) 키키표 기운을 나침반 삼아 잠시 답보 상태였던 우리의 꿈도 다시 제방향을 찾아갈지 모를 일이니까요.
- 키키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삶이란 예능을 춤추고 찍고 쓰는 크리에이터, 스토리텔러이자 30개월 여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키키(@kiki_moonheo)입니다. 반가워요 스티커 독자님들!
- ‘삶이란 예능’이란 문구가 재미있어요.
제가 PD였을 때 예능 담당이었어요. 평생 꿈이 남들을 웃기고 즐겁게 하는 거였는데 예능 PD가 되면서 그 꿈이 완전히 이뤄진 줄 알았죠. 막상 PD가 되고 보니 남들을 웃게 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지만 정작 제가 즐겁지 않은 날들이 많았어요. 그렇게 퇴사 후 생각해 보니 제 삶이 예능 그 자체더라고요. 기획, 연출, 출연 모두 다 제가 진두지휘할 수 있는 자유로운 예능 프로그램이요.
- 듣고 보니 그렇네요! 지금은 플랫폼만 방송국에서 유튜브로 바뀐 거고요.
방송국 퇴사를 고민할 때 제일 괴로웠던 게 여기를 박차고 나가면 내가 이룬 꿈을 제 발로 포기하게 되는 건가 하는 좌절감 때문이었어요. 돌이켜 보니 직만 PD에서 크리에이터로 바뀌었을 뿐이지 업은 연장선상에 있더라고요. 오히려 더 좋죠. PD의 역할뿐만 아니라 직접 춤추고 연기하면서 흥과 끼를 표출할 수도 있으니까요. 특히 누구보다 스스로가 일에 만족감이 너무 크니 더할 나위가 없어요. 내가 신나고, 남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지금의 삶이 너무 값져요.
- 그래도 취업 준비를 1년 넘게 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 그렇게 쟁취한 직장을 관두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오랜 시간 고민했어요. 뭐든 주니어 시절은 다 힘들잖아요. 방송국 생활은 밤낮없이 일해야 하니 더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일단 하는 데까지 해보자 하고 나름대로 여러 변화를 시도하면서 확신을 얻으려 노력했어요. 끝까지 해보고 아니면 결단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첫 직장인 채널A에서 JTBC 신입 PD로 다시 자리를 옮긴 것도 같은 맥락에서였죠. 환경이 변하고 프로그램이 바뀌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렇게 JTBC에서 소위 제일 잘나가는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는데 여전히 확신이 생기지 않았어요. 오히려 퇴사 후 불확실한 미래보다 매일 일을 하며 얻는 괴로움,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못하고 안주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점점 더 커졌던 것 같아요. 3년 정도 지나니 결단할 때라 느껴졌어요. 내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분명 다른 길이 있을 거라 믿었어요. 다음 경로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이대로는 아니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이후로 어떻게 해야할지 잘 모르는 채로 일단 이 생활에서 빠져나오는 게 목표였습니다.
- 콘텐츠 영감은 주로 일상에서 얻으시나요?
제 삶 자체가 콘텐츠 원천이라 영감도 일상에서 얻어요. 예전에 ‘엔조이 커플’ 인터뷰를 하면서 도움을 받은 방법인데 모든 일상을 콘텐츠 제작자의 눈으로 보도록 ‘스위치를 켜는’ 작업을 늘 동반하려고 노력해요. 왜 '망치를 든 사람은 세상에서 못만 보인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학생 때 삼각형 문제만 푼 날에는 간판에서도 삼각형만 보이는 거요. 그것처럼 영감의 스위치를 기본적으로 켜둬요.
그 후엔 기획을 발전시키는 '환경'을 꼭 마련하는 편이에요. '휴대폰 없는 산책'과 '연습장과 연필'이면 됩니다. 휴대폰을 두고 산책하면 잡생각들이 정리되고 뭘 만들고 싶은지가 명료해져요. 그 후에 소재가 정해지면 하루에 30분이건 1시간이건 연필을 쥐고 연습장에 끼적이는 시간을 가져요.
- 그렇게 만든 콘텐츠 중 가장 인상 깊은 영상을 꼽아주다면요?
<유(有)kids온더블럭 시리즈>를 추천합니다. 기본적으로 아이 키우는 다른 집들은 어떻게 사나 궁금하잖아요. 사람을 워낙 좋아하고 MC 보며 인터뷰하는 것도 저에겐 매우 신나는 일이라 네이밍이 딱 떠오른 순간 바로 탄력을 받아 진행 중인 콘텐츠랍니다. 출연 신청도 받고 있으니 누구든 우리집에 키키를 초대하고 싶으신 스티커 구독자분들은 연락 주세요!
- 출산 후 크리에이터 활동을 꾸준히 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콘텐츠 업로드 일정이나 횟수를 약속하지 않아요. 육아에 변수가 얼마나 많아요.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당연히 아이를 1순위로 돌볼 수밖에 없잖아요. 스케줄에 얽매이지 않으니 쫓기는 스트레스 없이 더 즐기면서 마음 편하게 꾸준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네요.
- 그래도 육아와 일 병행은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힘든 날들이 연속이잖아요.
아이가 등원한 동안만 일하고 하원 후엔 칼같이 육아 모드로 스위치 해요. 예전엔 일할 시간이 부족하다 느낄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딱 아이가 등원한 그 시간에만 일하는 삶에 매우 만족해요. 일의 진척이 느리더라도 하루에 내가 즐거울 수 있을 만큼 감당하고 아이가 편하게 느끼는 게 우선이에요.
이건 저만의 꿀팁인데 육아와 일을 건강하게 병행하기 위해 엄마 혼자만의 양질의 시간을 가지시길 꼭 추천드려요. 물론 일하지 않는 엄마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팁이에요. 저는 새벽 시간을 최대 활용합니다. 고요하고 적막한 시간을 만끽하고 나면 삶의 질이 달라져요.
우리 엄마들 온종일 내가 아닌 타인을 위해 에너지를 소진하잖아요. 육퇴 후엔 이미 지칠 대로 지쳐 나에게 좋은 기운을 줄 수 없어요. 잠들기는 아까우니 티비를 보거나 누워서 핸드폰 들여다 보는 게 다반사죠. 새벽에 몇 분만이라도 일찍 일어나 풀충전 되어있는 그 날의 골든 에너지를 나에게 투자해 보세요. 그 가치는 훗날 육아에도 일에도 탄탄한 결실로 드러날 거예요!
- 새벽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오전 5시에 함께 운동하는 키키챌린지가 요즘 정말 핫한 프로젝트잖아요.
키키챌린지는 오랫동안 해보고 싶던 폼의 콘텐츠였어요. 제 콘텐츠 중 유난히 운동이나 복근 관련 영상에 반응이 뜨거웠어요. 크롭티 입고 춤추는 영상을 올렸더니 춤에 집중하기 보다 ‘엄마가 어떻게 저런 몸을 가질 수 있냐?’ 라는 반응이 주를 이뤘고, ‘하루 15분씩 운동하면 생기는 일’ 같은 콘텐츠도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엄마, 운동, 복근 이 키워드로 뭔가 해야겠구나 싶었죠. 올해 1월 1일부로 1기 키키챌린지 모집을 시작하고, 그때부터 매일 새벽 5시, 엄마들과 30분간 라이브로 함께 운동하며 열심히 복근을 짓고 있습니다.
- 키키님 뿐만 아니라 함께 운동하시는 분들까지 너무나도 진심인 게 느껴져서 더 즐거워 보여요.
저만큼이나 모두가 즐거워해주셔서 참 감사해요. 키키챌린지는 매일 운동하는 습관을 세팅하는 데에서 나아가 나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이에요. 몸도 변하지만 마인드도 맑고 건강해져요.
저에게도 키키챌린지는 각별한 의미의 프로젝트에요. 매일의 루틴이다 보니 성취감 높은 직장이 생긴 듯한 만족감이 있어요. 외연이 확대되고 많은 분들이 주목해 주시니 책임감도 남다르고요. 온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임하니 애쓰지 않아도 성과가 따라오더라고요!
- 반면 일상 콘텐츠는 현웃 터지는 영상들이 많아요. 제가 저장한 것만도 여러 개일 거예요.
원래 초등학교 때 꿈은 개그맨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그간 품었던 수많은 꿈 중에 '남들을 웃기고 싶다'만이 순수하게 뭘 하고 싶다는 '동사형 꿈'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꿈들은 명예나 지위처럼 그 직업 너머의 다음 것을 갖고픈 명사형 꿈이었던 것에 반해서요. 예나 지금이나 남들 웃기는 게 좋아요. 연기하는 것도 좋아하니까 웃기는 캐릭터의 콘텐츠를 만드는 게 저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죠.
- 개그맨이 꿈이었는데 카이스트를 진학한 것도 독특해요.
웃기는 것만큼 인정 욕구도 강한 학생이었어요. 학생의 신분으론 최고의 인정이 성적과 직결되니까 당연히 공부도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기본적으로 야망이 큰 학생이었어요. 과학고와 외고 사이에서 진학을 고민할 때도 세계로 뻗어 나가야겠다는 일념으로 외고를 택했고, 대학교 때는 당연히 내가 스티브잡스나 빌게이츠처럼 될 거라고 믿었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웃기고 춤추는 거 좋아하는 DNA는 숨기질 못해서 축제 때마다 무대를 휘어잡긴 했었네요. 하하.
- 한때 야망 좀 컸던 키키님, 크리에이터로서의 야망도 궁금해지는걸요.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야망이 많이 사라졌어요. 지금처럼 물 흐르듯 결대로 살아가는 삶의 과정 하나하나가 너무 소중해요. 야망을 이루려고 애쓰면서 분투했던 과거가 지금의 넉넉한 시야를 갖게 한 자양분이 됐어요. 오히려 이렇게 결대로 살다 보니 과거 모든 걸 손에 쥐려고만 했을 때 원했던 것들을 자연스럽게 얻게 돼요. 희한하죠. 예전엔 나만 잘 되려고, 나만 돋보이는 데 집중했다면 요즘은 남들과 함께 어우러져서 혹은 남을 더 잘 되게 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는데 알아서 일이 술술 풀리거든요. 키키챌린지 처럼요!
- 육아가 키키님의 이런 변화에 영향을 줬을 것 같아요.
맞아요. 아이가 없었다면 일 중심의 번아웃 되는 삶을 살았을 텐데, 육아를 하며 불가항력적 많은 제한을 맞닥트리면서 그것만이 가치 있는 일, 가야 하는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오히려 좀 느리고 부족해도 더 풍요롭다는 감정도 알게 됐고요.
- 아이 육아 철학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따듯한 심성을 지닌 아이로 컸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으로 어떤 보상을 바라지 않고 선하게 남을 배려하고 위할 때, 나도 위해질 수 있다는 진리를 깨달았으면 해요. 저도 이 철학을 바탕으로 언행하며 일깨워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나를 너무 드러내려 하기보다 최선을 다하는 그 자체만으로 보상이 된다는 걸 아는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키키 님은 항상 긍정 에너지로 가득 차 보이는데, 텐션이 떨어질 때는 어떻게 극복하시나요?
보통의 엄마들처럼 넷플릭스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으로 해소하기도 하는데, 그러다가도 결국 새벽에 내 시간을 갖는 루틴으로 돌아와서 마음을 다잡는 편이에요.
이 밖에 가볍게는 육아를 시작한 후엔 살림도 힐링의 한 방법이 되더라고요. 머릿속이 복잡할 때 설거지를 해치우면 쓸데없는 생각이 싹 사라지면서 머릿속이 말끔해 지기도 하고요. 운동이나 춤을 추며 땀을 흘리거나, 늘 객관적 판단을 우선시하는 저희 엄마와 대화를 나누며 기분을 환기시키기도 합니다.
-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엄마들에게 조언 부탁드려요.
시대적으로 너무 좋은 상황이에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쇼츠, 릴스처럼 짧은 숏폼 콘텐츠가 각광받고 있잖아요. 육아하느라 못 한다고 포기하지 말고, 아이가 있으니 짧은 콘텐츠로 시작해 보세요.
그리고 아이가 있어 오히려 좋아요. 아이가 데드라인을 정해주거든요. 저도 예전 같으면 완벽하게 해내려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서 한 콘텐츠 끝맺는 데 과하게 오랜 시간을 썼을 거예요. 근데 지금은 육아 출근 전까지 끝내야 하니까 조금 부족해도 마무리 지어요. 강박적으로, 직업이라 생각하지 말고 크리에이터 생활을 덤이라고 생각하면서 편하게 즐기면서 일단 시작해 보세요.
-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진짜 원하는 꿈의 길을 걷고 있는 1인으로서 꿈을 잃은 엄마들에게도 한 마디 해주세요.
진지하게 나와의 대화를 계속해보세요.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제 경우엔 사람들에게 긍정 기운을 주는 것이더라고요. 그걸 정렬시킨 후 하나씩 할 수 있는 일들을 좁혀나가다 보면 결국 꿈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글쓴이 한송이(@oh.myleon.reve) 님의 자기소개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스티커 제 1기 객원 에디터 활동을 하게 된 갓 둘째를 낳은 남매 육아맘이자 (현재 휴직 중인) 워킹맘으로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한송이 라고 합니다. 스티커 객원 에디터 지원서 중 ‘에디터가 된다면 기획하고 싶은 콘텐츠’ 항목에 우리네 삶과 비슷한 모양을 지닌 엄마들의 랜선 인터뷰 라는 다부진 컨셉을 적어 내긴 했는데, 그 뒷감당을 실제로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네요.
이 기획을 품고는 설레면서도 떨렸어요. ‘인.터.뷰’ 말만 들어도 굉장히 거창해 보이잖아요. 결과적으로 인터뷰이를 고심해서 선정하고 쿵쾅이는 심장 부여잡은 채 섭외 메일을 보내고, 귀한 손님에게 서신 쓰는 심정으로 정성을 다해 만든 질문지에 답지를 받는 일련의 모든 과정이 몹시 벅차고 행복했습니다. 24시간 늘 똑같은 육아 굴레에서 벗어나 만난 유쾌한 전율이랄까요. 게다가 사심 가득 담아 오랜 팬으로 지켜본 분들을 인터뷰이로 모셨으니 더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피 땀 눈물이 뒤범벅되는 육아 전선에서 분투하며 꿈이란 이름의 일까지 부지런히 좇아 걸어가고 있는 엄마들의 이야기를 나누어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