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트리스를 만드는 엄마

식스티세컨즈 브랜드 디렉터 김한정





- 얼마 전에 두 딸들과 미국에 다녀오셨더라고요?


식스티세컨즈가 올해로 10년이 되었거든요. 지난 십 년은 날것이어도 되는, 리스크를 감수한 도전의 시기였어요. 그런데 10주년이라니… 그렇다면 브랜드 오리지널리티를 제대로 보여줘야 할 것 같고, 넥스트 스텝에 대한 심리적 압박도 있었어요. 또 큰 아이가 중2라 사춘기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의 시그널도 한꺼번에 왔죠.



- 여행 후 그 고민들이 해결되었나요?


네. 그 어느 때보다 건강해요. 그냥 문제를 마주하게 되었어요. ‘하나하나 풀어보면 되겠다. 여태까지 그렇게 해왔는데 뭐 갑자기 비법을 찾고 그래.’ 하는 마음이 들었죠. 또 뉴욕에서 정말 절실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이렇게 보니까 ‘내가 너무 징징댔구나, 내가 처한 일은 별 게 아니네’, 하는 각성도 하게 됐고요. 

- 두 분 대표님이 각각 5백만원씩 투자해서 창업한 걸로 유명해요. 제조업인데, 말도 안돼요.


아, 5백이었나요? 4백 아니고?(웃음) 조재만 대표와 저는 전 직장 동료였어요. 전 가구 디자이너이고 그는 유통 전문가였고요. 전 2002년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했는데요, 2013년 당시 조대표가 창업을 제안했을 때 인하우스 디자이너로서 성장에 한계를 느꼈던 때였어요. 게다가 매트리스에 진심이신 공장 사장님과의 인연이 독립을 결정하는데 결정적이기도 했어요. 사장님이 파격적인 조건으로 매트리스를 제작해 주셨거든요. 물건이 팔리면 제작대금을 내라는 거였죠. 그래서 저희가 큰돈 없이 창업할 수 있었던 거예요.



- 대단한 귀인이시네요.


맞아요. 40년 가까이 매트리스를 만드신 분인데 젊은 애들이 이걸 어떻게 브랜드화를 하는지 굉장히 궁금해하셨죠. 생각해보면 진짜 중요한 건 사람인 거 같아요. 조직에서 나오면 인간관계가 정리된다고 하잖아요. 실제로도 그렇고요. 매트리스 공장 사장님처럼 초기엔 나 하나만보고 도와주는 사진가, 제작자들 덕분에 시작할 수 있었어요. 혼자 하긴 어려워요.

- 당시 몇 개 제품으로 시작하셨어요?


매트리스 3종, 토퍼 2종, 하단 매트리스 2종 그렇게 만들어서 시작했어요.



- 타 매트리스 브랜드와 구분되는 점은 무엇일까요?


하단 매트리스라고 부르는 파운데이션이 저희 브랜드를 조금 다르게 보이게 한 것 같아요. 저는 프레임 없이 파운데이션만으로도 침대가 완성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파운데이션은 하중도 분산되고, 매트리스의 수명도 늘어나서 더 나은 수면에 도움이 되거든요. 



- 그럼 프레임 없는 침대를 처음 디자인하신 거예요?



정확하게 말하면 처음 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파운데이션이야 나무 침대 프레임 안에 들어가는 형태로 있기도 했었고, 매트리스 전문 브랜드들은 파운데이션을 늘 필수로 가져갔었으니까요. 다만 저는 그 파운데이션을 침대 프레임을 대체할 수 있는 가구 형태로만 바꾼 거예요. 파운데이션을 매트리스랑 딱 맞게 디자인하고 기존의 플라스틱 다리 대신 고급 목재로 다리를 만들었어요. 파운데이션을 바깥으로 내놓아도 되게 한 거죠.


- 식스티세컨즈의 성장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첫 번째는 저희 브랜드의 별명을 지어주신 분들, 저희 매트리스를 구매하신 분들이죠. 식스티세컨즈는 매트리스 기능 관점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 관점에서 접근한 브랜드거든요. 그런데 이걸 사용해 보신 분들이 ‘헤드 없는 침대’라고 이름을 붙여주신 거예요. 그분들을 통해 저희 브랜드가 알려지게 되었죠. 점차 저희 제품을 가성비템으로 소개해주신 분들도 많으셨고요.


두번째는 브랜드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면서 도약을 한 것 같아요. 대치동의 식스티세컨즈 홈, 한남동 식스티세컨즈 라운지가 그랬죠. 보통 매트리스 매장은 제품 중심으로 디스플레이가 되어 있는데, 저희 공간은 사용자 중심으로 되어 있어요. 식스티세컨즈 라운지는 방마다 조용히 머물 수 있게 조도를 낮추었고요. 혹여 누워계실 때 제품을 비추는 핀조명에 눈이 부시지 않도록 모두 간접조명으로 되어 있어요. 매트리스 경험은 쉽지 않아요. 옆에 누가 있어도 신경 쓰이고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요소가 많죠. 나에게 맞는 걸 찾는 과정이 꽤 어려운 상품이기 때문에 우리의 공간이 그런 내비게이션의 요소로 설계가 되었어요.


- 그런데 경험의 요소가 강조되다 보니, 오히려 매트리스 자체의 기능적 장점은 뒤로 감춰진 것 같기도 해요.


매트리스를 음식에 비유해 볼게요. 인스타그래머블한 음식이 호기심을 자극할 순 있는데, 자주 먹을 수 없는 것도 많잖아요. 매일 먹거나 쓰는 건 자극적이지 않고, 좋은 재료가 선행되어야 하죠. 전 제품 개발자 출신이잖아요. 좋은 재료를 쓰고 기능 인증을 받는 건 기본이라고 생각해요. 이걸 마케팅적으로 대놓고 강조하지 않는 건 소비자 판단에 혼란이 올 수 있어서고요. 검색을 해보면 몇 십만 원부터 몇 천만 원짜리 매트리스까지 모두 자기네 제품이 최고라고 이야기하거든요. 소비자 입장에선 그걸 판단하기 어려운데, 저희가 기능만으로 최고라고 어필하면 나랑 안 맞는데도 좋은 상품인 걸로 착각할 수 있어요. 매트리스는 본인의 수면 습관과 라이프 스타일에 맞춰져 있는 걸 찾아야 해요. 비싸지 않아도 나에게 높은 만족감을 줄 수 있거든요.



- 그런 의미로 기능을 전면에 강조하진 않는다는 거군요?


네. 제품의 질이 좋은 건 너무 당연한 거고, 라는 마음이 있는 거죠. 하지만 사실 저희 홈페이지라든가 상품 설명에는 단계별로 다 설명이 돼있어요. 정서 먼저, 기술적인 건 그 이후에 어필해요.



- 제가 인상적이었던 게 ‘뒤척임을 느낄 수 없는 매트리스’라는 표현이었는데요, 그게 스프링매트리스가 아닌 걸 그렇게 표현하신 거더라고요? 


맞아요. 폼매트리스라는 말이 처음부터 나오면 어렵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고밀도 매트리스, 롱래스팅 같은 기술과 기능을 표현하는 단어들을 쉬운 단어로 통역을 하려고 노력중이에요.

- 10년 동안 조직을 이끌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뭘까요?


초기 5~6년 동안은 저의 경쟁력이 브랜드를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작업들을 했죠. 직원들에게도 ‘내가 다 알려줄게, 내가 먼저 다 할게’, 그런 식이었어요. 하지만 언제가부터 직원들과 비슷한 속도로 같은 방향을 보고 가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일하는 친구들이 어떻게 일하는 게 최선일지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사이에 함께하는 친구들이 엄청 커있더라고요. 우리 아이들도 똑같잖아요. 10년차가 된 지금은 경영적인 측면보다 브랜드 디렉터로서 딴짓을 더 많이 하려고 해요. 넓은 관점에서 방향 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길을 먼저 가봐야 하잖아요.



- 지난 세월 육아와 일을 잘 병행해온 비법 좀 알려주세요.


아이 낳고 회사 다닐 땐 밸런스라는 건 전혀 없었죠. 그때는 애들이 3살, 5살이었잖아요. 정말 손이 많이 가서 내 생활이 없었죠. 사실 저는 비결이랄 게 없어요. 굳이 있다면 부모님의 도움이었죠. 그렇지 못한 상황의 분들껜 민망하지만 제가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부모님 덕분에 병행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 일 하는 엄마로서 본인의 육아철학, 아님 특징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한마디로 정리하긴 어려운 문제네요. 제가 육아철학이란 게 있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어느날 시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넌 뭘 그렇게 애들한테 물어보니? 넌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그러더라.” 네, 전 의견을 많이 물어봐요. 아이들도 다 본인의 의견이 있잖아요. 이번에 2주간 미국 여행을 갔을 때도, “뭐할래? 호텔에 있을래? 그래 그럼 엄마만 미술관 다녀올게.” 그런식으로 물어보며 지냈어요. 첫째가 숙제를 싸온 게 맘에 들진 않았지만, 그 숙제를 해야 맘이 편하다니까 하루종일 도서관에 있었던 날도 있고요. 신입사원들도 그렇잖아요. 물어보지 않아서 답을 안하고 반영이 안 될 뿐이죠. 아이들도 똑같은 것 같아요.



- 사업과 육아 사이에 상호작용이군요. 


맞아요. 분명히 사업과 육아 사이에 상호작용이 있어요. 직원들을 보면서 아이들의 미래를 그려봐요. 저렇게 삶을 꾸릴 수도 있구나 배우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뭐가 됐음 좋겠다 같은 건 잘 모르겠어요. 벌써부터 아이들의 목표가 명확한 것도 좀 무서운(?) 것 같고. 뭘 하겠다 하면 지지하고 알아봐주는 정도로 살아요.

- 엄마들이 창업하려면, 가장 걸리는 게 시기, 구체적으론 아이의 나이죠. ‘지금은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시시때때로 하니까요. 먼저 시작하신 선배로서 의견을 주신다면요. 


사실 창업을 못할 이유는 지금도 너무 많아요. 저를 예로 들자면 이제 첫째가 중학교 2학년에 올라가고 시험이란 게 시작되니, 신경 쓸 게 생기잖아요. 또 여전히 돈은 없고요. 시간은 그때도 없었지만 지금도 없어요.



- 그럼 언제 시작해야 하죠?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시면 되는 것 같아요. 만약 지금 시간도 없고 돈도 없고 해서 요만큼밖에 못 할 것 같다면, 딱 요만큼만 하심 될 거 같아요. 콘텐츠를 만드는 일을 하고 싶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 밖에 못 쓸 것 같다면 그렇게 하시면되고요. 그렇게라도 하면 되는데, 안 해보면 절대로 모르는 영역이 있거든요. 머리로만 상상하는 게 아니라 부딪혀야 아는 영역이요. 맞으면 가고 아니면 멈추고, 보폭은 스스로 그때마다 결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일단 시작해보면 비슷한 분야라고 할지라도 직장 생활과 창업은 생태계가 다르다는 걸 아시게 될 거예요. 알아가고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 엄마들에게 "창업하려면 이건 정말 알고 시작해야 돼!" 라고 조언한다면요?



좀비 게임 해보셨어요? 그 게임을 하다 보면 정말 끝도 없이 좀비들이 덤벼오거든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그런 좀비들이 실제로 다가와요. 갑자기 코로나가 터지기도 하고요. 창업을 할 때 커리어를 더 이어가고 싶어서 혹은 내 커리어를 좀 더 확장하고 싶어서 등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겠지만 그 과정에는 굉장히 많은 좀비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큼은 알고 시작해야 할 거 같아요. 다행히 어려움이 한꺼번에 오지는 않으니까 너무 걱정 안 해도 될 거 같아요.


 

-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을 해서 좋았던 건요?


제가 그 수많은 좀비들을 상대하면서 엄청 성장했다는 거죠. 지난 10년, 만약 제가 다른 회사로 이직했었다면 지금같은 성장은 못 이뤘을 것 같아요. 어쨌든 좀비가 나타나면 내가 해결해야 하잖아요. 얘를 어떻게 물리칠 것인가, 어떤 도구를 쓸 것인가, 그냥 맞고 누워 있는 척이라도 해야 하나… 고민하고 시도하고 실패하고. 그런 과정들이 결국에 엄청난 성장으로 이어지죠. 전 육아와 브랜드를 키우는 과정이 정말 유사하다고 느껴요.


- 스트레스 케어는 어떤 방법으로 하나요?


첫 번째는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죠. 저는 말하는 걸 좋아해요. 특히 다른 분야의 사람들을 만나 다양한 주제의 이야기하는 게 참 긍정적인 거 같아요. 그리고 책을 뒤지는 편이에요. 생존형 독서를 하면서 답이 될 만한 것들을 찾기도 하고요. 세 번째는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 가면서 생긴 습관인데, 산에 오릅니다. 아파트 뒤에 산이 있거든요. 올라갔다 내려오는데 30분도 안 걸리는데 머릿속에 있는 잡생각들이 빠져나가는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걷다가 중얼중얼하면서 괜찮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녹음도 해요. 



- 일과 휴식의 조화네요.


맞아요. 일과 휴식을 딱 나눈다기보다, 서로 조화가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