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장인의 도전

모리함 대표 최나영




사람들이 갖는 불안함의 일정부분은 일로부터 발생해요. 일을 함으로써 경제적 자유 뿐 아니라, 삶의 의미를 찾을 수도 있죠. 그런 점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오래, 꾸준히 할 수 있는 일을 갖는 건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에요. 부모님들이 그렇게 ‘기술’을 배우라고 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아요.


모리함(@moryham)의 최나영 대표는 한국 전통 표구를 사사받은, 젊은 장인이에요. 굴지의 IT 회사에서 10여 년간 일하던 그녀가 왜 돌연 손으로 하는 일에 빠졌을까요? 모리함의 창업 스토리를 듣다 보니 손과 맘이 동시에 간질 거리네요.


이 인터뷰는 메타(Meta)와 함께 #SheMeansBusiness 캠페인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으로 영상 버전은 아래 버튼을 클릭하시면 보실 수 있어요. 스티커와 메타는 세상 모든 여성들의 비즈니스를 응원합니다!


- 모리함은 어떤 브랜드 인가요?



‘소중한 기억과 이야기들을 특별하게 다루어 담다’라는 뜻의 모리함은 병풍이나 족자, 화첩, 서책 등을 다루는 한국의 전통 표구 기술을 기반으로 운영하는 브랜드입니다. ‘모리함’이라는 이름으로 설명 드리자면, 영어로 메모리의 ‘모리’와 우리가 흔히 아는 ‘함’을 합쳐서 만들었어요. 물론 한문으로도 마음으로 그릴 모[慕], 특별하게 다룰 리[異], 품을 함[函]을 의미해요. 

- 어떻게 이 일을 시작하게 됐나요?


10여 년간 IT 회사에서 상품기획자로 근무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너무나 갑작스럽게도,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돌아가셨어요. 그렇게 사고처럼 찾아온 슬프고 공허한 시간들이 저에게 많은 것을 깨닫게 해주었어요. 정작 가장 소중한 것들을 잊고 살고 있었던 건 아닌지 스스로가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때 유품을 정리하면서 30년이 훌쩍 지난 진주목걸이를 발견하게 됐어요. 엄마의 추억이 담긴 이 목걸이는 저에게 그 어떤 보석보다 더 소중했고, 이걸 어떻게든 오래 간직할 수 있는 형태로 담고 싶었어요. 이게 제 첫 모리함이 되었습니다. 저뿐 아니라 다른 분들도 이렇게 추억을 간직하면 좋겠다 싶어서 모리함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이 과정에서 이걸 보다 더 한국적인 방식으로 담고 싶어 한국 전통 표구까지 사사받게 되었습니다.



- 모리함에는 주로 어떤 분들이 오시나요?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각자의 소중한 이야기, 작품들을 기록하고 보관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많이들 찾아오세요. 단순히 보관 개념 이상으로 존경과 감사를 표하기 위해 혹은 기쁨의 순간을 기록하거나 슬픔을 추모하기 위해 모리함을 제작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 전통 표구 사사를 받는다는 건 어떤 과정인가요?


한국 전통 표구는 기록 자료가 적고, 대부분 구전과 경험으로 축적되어온 기술이라 표구 자체를 전문으로 하는 교육기관을 찾아보기가 힘들어요. 한국 전통 표구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인사동에서도 사사 받기도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인사동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냥 서 있는 것만으로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매일매일 눈치껏 걸레질도 하고 청소도 하고 붓도 빨면서 조금씩 선생님들의 맘을 열려고 노력했어요.


한편으로는 선생님들이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여자가 하기 힘들다, 오래 버티기 힘들 것이다.” 그럴 때마다 전 “아니에요. 선생님 더 디테일할 수 있고 더 섬세할 수 있고, 더 현대적인 거를 제가 시도해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가르쳐만 주세요!”라고 계속 설득했어요. 그렇게 전통 표구들을 4~5년 정도 배웠고 그 과정 속에서 전통 표구의 미래에 대해 더 확신을 갖게 됐어요. 



- 문화재 수리 기능자가 되는 과정은 어떤가요?


전통 표구는 사사부터 모든 과정이 정답이라는 게 없었어요. 어떻게 하면 전통 표구를 좀 더 전문적으로, 학문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수리 기능자라는 자격이 있는 걸 알게 되었어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나의 표구 작품을 완성시키는 실기시험과 개인의 자세와 소양을 확인하는 면접시험으로 구성되어있는 시험에 합격해야만 하죠. 이 과정을 통해 문화재 수리 기능자 자격을 취득하게 되었습니다. 

- 아이템을 뛰어넘어 콘텐츠를 파는 것 같아요. 모리함의 가장 큰 매력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야기가 주는 감동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새 물건을 샀을 때 받는 감정과는 다르게 사소한 거라도 내 이야기가 담겨있음 그게 감동이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워낙 빠르게 변화하고 눈만 뜨면 새롭고 간편하고 좋은 것들이 생겨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명 지켜야 하고 기록해야 할 것들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고객님께서 들려주신 이야기를 모리함에 담아내는 플랫폼으로써의 역할을 하는 것이고요. 또 전통문화를 지키고 보전하는 것 역시 저희가 끝까지 보존해야 할 큰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 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이 있다면요?


모리함을 통해 정말 많은 삶의 이야기를 만나고 있어요. 예전에 한 아버지의 유품 여러 개를 오래된 사진들과 함께 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게 아직도 참 기억에 남네요. 저는 이때 이것들을 유품이라고 말하지 않고 ‘아빠 뮤지엄’이라고 불렀어요. 아버님이 평생 동안 사용하셨던 여러 장의 아이디 카드부터 생전에 즐겨 하셨던 모자와 만년필, 딸에게 남긴 편지 등 많은 물건들을 작업했어요. 완성된 모리함은 형제들과 가까운 친척들과 하나씩 나눠 갖으셨는데, 그게 아버님을 오래 기억하고 추모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셨죠. 한 사람의 찬란한 인생을 그렇게 기록할 수 있었다는 점이 저에게도 큰 감동이었어요. 

- 모리함이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는 신념이 있다면?


사적인 이야기를 담는 작업이다 보니, 상담부터 픽업까지 모두 다 대면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직접 마주하지 않고서는 전해지지 않는 감정들이 있잖아요. 만나서 얘기하다 보면 눈빛이나 표정, 행동 등을 통해 좀 더 상대를 잘 이해하게 되죠. 그런 대면 상담을 통해 표구의 형태나 디자인 구도, 패브릭 컬러, 작품의 공간 배치 등을 통합적으로 고려한 완벽한 나만의 작품이 완성되죠. 진심을 다해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존중하는 것이 모리함이 가장 중요하게 지키고 있는 가치이자 신념입니다. 

-창업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사실 저도 다른 일을 하다가 손으로 하는 일을 하게 됐잖아요. 이 일을 하다 보니 직장을 다닐 때와는 또 다른 차원으로 깊고, 진하게 일의 기쁨을 느낄 수 있게 됐어요. 만일 저처럼 젊은 장인을 꿈꾸는 분이 있다면 얼마든지 도전해 보라고 하고 싶고요.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요즘에는 갯수도 상관이 없어진 것 같아요. 본업이나 하는 일 외에도 이쪽에 관심이 있거나 만드는 걸 좋아한다면 취미로 시작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나중에 이 취미가 더 큰 무언가가 될 수도 있으니깐요. 그러니 일단, 도전해보세요. 망설이지 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