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꿀 수 있는 집을 꾸며요

공간 디자이너 한상선




사는 공간이 곧 나를 얘기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집을 꾸미는 것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과 궤를 같이하죠. 내가 평소에 어떤 컬러를 좋아했는지, 쉴 때는 주로 어디서 머무는지, 아이들에게 어떤 라이프 스타일을 가르칠 것인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집을 꾸미다 보면 알게 되죠. 나다운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은 우리를 좀 더 여물게 만들죠. 봄이라 그런지, 집 꾸미기에 대한 갈망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네요. 


모든 질문을 등에 업고 8년 째 공간 디자이너로 살고있는 아들 둘 맘 한상선님(@myloveapple2)을 만났어요. 매번 수익의 일부를 기부하고, 좋은 일에는 두 팔 걷고 나서는 상선님의 따뜻한 성정이 모든 작업 속에 묻어 있었어요. 상선님이 꾸며 놓은 노랑 조명이 켜진 포근한 집으로 초대할게요.

-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저는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인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꿈꾸는 집 디자이너’ 한상선입니다. 공간 디자인을 시작한 지는 이제 8년 정도 되었고요.


처음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신혼집을 꾸미면서부터에요. 제가 원하는 집을 해줄 수 있는 인테리어 회사를 찾기가 어려워서 모든 걸 직접 했어요. 벽지가 싫어서 페인트 도장을 했고, 의자 하나도 이태원 앤틱 시장에서 고른 후 다시 칠을 했어요. 가스레인지도 하얀색 빈티지를 사서 설치했죠. 그 당시 유행은 냉장고 문에 크리스털 꽃무늬가 장식된 것들이었는데 저는 그게 너무 싫어서 이태원 구석구석을 찾아 다니며 저의 스타일을 찾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나하나 나만의 스타일로 만든 집을 우연히 잡지사에서 보고 기사로 실어주셨어요. 이쪽 일을 하면 좋을 거 같다는 조언까지 해주셔서 그때부터 공간 스타일링에 대한 막연한 꿈이 생겨났어요.

- 공간 디자이너만의 아이방 꾸미기 노하우가 궁금해요.


아이방을 꾸밀 때 수납에 신경 쓰는 편이에요. 전체적으로 안 쓰는 것들을 한 번 정리하는 작업이 제일 먼저 필요한 것 같아요. 옷, 아이들의 자잘한 문구용품, 장난감들은 자기 자리를 만들어줘야 깔끔해 보여요. 서랍과 오픈형 수납장, 도어형 수납장 이 세 가지를 적절하게 섞어서 효율적이면서도 보기에도 좋은 수납을 해보세요. 저는 인테리어를 할 때 몬타나와 어린이 가구 브랜드 바치(bacci)의 가구들을 즐겨 사용하는 편이에요. 색상 다양하고 사용자의 니즈에 맞게 사이즈와 디자인을 정할 수 있어요. 



- 코로나로 인해 아이가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아이방이 놀이방이자 공부방이자, 교실인데요. 이런 상황의 구분을 인테리어로 해줄 방법이 있을까요?


일반적인 30평대 방들은 자는 공간과 공부하는 공간, 노는 공간을 한 방에서 확실하게 나누기가 쉽지 않은 거 같아요. 아이가 한 명이라면 방 두 개를 각각 침실과 공부방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가 흔치는 않죠. 그래서 저는 침대에는 쿠션과 인형, 아이가 좋아할 만한 그림을 걸어서 조금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공부하는 공간에는 책상과 책장, 조명과 메모판 등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느껴지는 무드가 다르게 스타일링을 하는 편이에요. 정말 좁은 공간이 아니라면 침대와 책상은 같은 벽이 아닌 다른 벽에 각각 배치를 하고요. 



- 수많은 아이방을 인테리어 하셨어요. 아이방 꾸미기에서 남다르게 도전해본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가장 많이 의뢰하시는 30평대 아파트는 보통 방이 3개인데, 한 고객님 댁은 아이가 셋이었어요. 안방 하나에, 형, 누나 방을 주고 나면, 막내를 위한 방이 없는 상황이었죠. 고민 끝에 안방에 있는 팬트리 공간을 아이방으로 변신시켜주었어요. 작은 공간이고 창문도 없는 공간이었지만 수납형 침대를 공간에 딱 맞게 제작하고 벽에 걸 수 있는 간단한 책장과 책상을 넣었더니 아늑한 공간으로 변신했어요. 아이가 정말 좋아했던 기억이 나요. 짐을 조금 줄이실 수 있다면 새 아파트에 여유 있게 나오는 팬트리 공간을 활용해서 아이만의 특별한 공간을 만들어보세요. 

- 집에서 엄마만의 공간도 중요한 것 같아요. 엄마의 공간을 어떻게 마련해 보면 좋을까요?


집에서 온종일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엄마의 공간이 더욱 필요해요. 작은 1미터 테이블 하나 정도만 둘 수 있어도 잠깐 책을 읽거나 일과를 정리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되는 거 같아요. 따뜻한 조도의 조명이 더해진 작은 책상을 주방 옆이든 안방 한쪽 벽이든, 거실 한켠 이든, 약간의 자투리 공간에 만들어보세요.


예를 들면 거실을 확장했는데 날개벽이 철거가 안 된다면 그 공간에 작은 책상을 두실 수도 있고요. 냉장고장이 보통 두 칸으로 나오는데 냉장고를 하나만 쓰시는 분들은 남은 한칸을 그렇게 이용하 실 수도 있어요. 그 공간에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나 둘 두는 거죠. 내 공간이니까요. 마음에 드는 테이블을 선택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조명과 의자, 내가 좋아하는 그림과 소품 책 등을 하나씩 채워보세요. 작은 공간이지만 소소한 행복을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 실제로 상선님은 집에서 어떤 공간을 자기만의 힐링 공간으로 꾸미셨나요?


얼마 전 고민 끝에 안방에 작은 데스크를 두었어요. 결혼하고 17년 만에 처음 한 평 남짓한 저만의 공간을 가지게 된 거죠. 그 작은 공간에서 일을 할 때도 있고, 저녁에는 성경을 읽고 감사일기를 쓰기도 해요. 일주일에 한 번 줌으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선물 받은 시집을 들춰 보기도 하죠. 소소한 것들이지만 저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생기니 삶이 조금 정돈되었어요. 너무 앞만 보고 달리는 게 아닌 옆도 보고 뒤도 보고 제자신도 돌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거 같아요. 



- 코로나 탓에 집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다들 인테리어에 관심이 더 많이 늘어난 것 같기도 하고요. 봄이라 좀 집을 다르게 꾸며 보고 싶은데 간단한 팁이 있을까요?


모든 인테리어의 시작은 정리예요. 불필요한 것들을 과감히 버린 후에 시작하시는걸 추천해 드려요. 가장 간단하게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건 그림이에요. 요즘은 오리지널 포스터나 넘버링이 되어 있는 판화, 큰 사이즈의 원화까지. 공간에 잘 어울리는 그림은 가장 간단하게 집 분위기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이면서 집주인의 취향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죠. 

- 작업을 보면, 가구나 소품들을 해외 구매도 많이 하세요. 괜찮은 사이트나 구매 요령이 있나요?


노르딕네스트나 로얄디자인 같은 곳들은 이미 한국에서 물건을 구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을 정도로 편리하게 되어있을 뿐만 아니라 한국어 서비스도 가능해요. 카톡으로 질문하면 빠르게 답변도 오고요. 개성 있는 리빙 제품을 원하시는 분들은 어반아웃피터스를 추천해요. 이곳도 한국어 사이트가 생겼고 15만원 이상은 한국까지 무료배송 되는데 흔치 않고 재미있는 리빙 소품들을 다양하게 보실 수 있어요. 



- 인테리어 영감을 받기 위해 가면 좋을 만한 장소가 있을까요?


우선, 자곡동에 있는 원오디너리맨션이 생각 나네요. 장 푸르베, 한스 베그너, 허먼 밀러, 샬로트 페리앙 등 거장들의 빈티지 가구를 구경할 수 있어요. 공간 자체도 이국적이고 웅장해서 가구를 보며 힐링하기 좋은 곳이죠. 새로운 빈티지 제품들이 들어올 때마다 가구와 조명들이 조금씩 바뀌어서 기간을 두고 한 번씩 들르는 걸 추천해요.


또 에잇 컬러스, 이노메싸, 원더라움 등 북유럽가구들을 소개하는 편집숍들은 신상품을 가장 발 빠르게 만나 볼 수 있는 곳이예요. 조화롭게 스타일링된 공간들을 보고 있으면 그대로 집으로 옮겨놓고 싶어지실 거예요.


음, 시간이 좀 더 된다면 서촌을 둘러보는 것도 추천해요. 서촌 구석구석 개성 있는 상점이나 음식점 등은 보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뿐 아니라 대림미술관이나 환기미술관 박노수 미술관까지 두루두루 감상하다 보면 복잡했던 머릿속이 깨끗해지는 느낌까지 들죠.

- 워킹맘이에요. 게다가 현장에 다닐 일도 많고요. 일과 육아를 어떻게 구분하세요?


둘 다 잘하는 건 쉽지 않은 것 같아요. 특히 저는 한 곳에 집중하면 다른 곳에는 신경을 잘 쓰지 못하는 타입이라 일이 주는 만족감이 너무 크고 좋아서 아이들 엄마로서의 역할에 소홀했던 부분들이 많았어요. 지금도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가족들의 희생이 있다고 생각해요. 중간중간 카톡으로 아이들과 소통하고 앱이 발달된 시대라 일하다 아이들이 먹을 점심을 배달시키기도 하고요. 자기 전에 다음날 아침 식사를 새벽배송으로 시켜두기도 하죠. 정말 10년만 일찍 태어났어도 저는 워킹맘이 힘들었을 거 같은데 시대를 잘 타고난 거 같아서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 자신만의 육아 철학이 있다면요?


저는 크리스천이라 제 생각과 고집대로 아이를 휘두르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편이에요. 어느 순간 아이들에게 제 생각을 강요하고 늘 잔소리하는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아들 둘을 키우다 보면 종종 제 자신이 통제되지 않을 때와 맞닥뜨리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저를 내려놓고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스티커의 공식 질문입니다. 쑥쑥 자라 70대가 되면 어떤 할머니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40대 중반이 되니 어떻게 나이 들어가야 하는가에 대해 한 번씩 생각하게 되는 거 같아요. 70세에는 나의 고집보다는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모습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손주들과도 말이 잘 통하는 할머니였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70대에도 저는 일을 쭉 하고 있을 거 같아요. 주변의 친한 할머니들 집을 꾸며주고 있지 않을까요?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 제가 할 수 있는 봉사도 열심히 하고 싶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