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럴 수 있지"라고 말해봐요
그로잉맘 대표 이다랑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지 불안해지거나, 누가 뭐라지 않았는데도 육아 죄책감이 들 때면 그로잉맘의 유튜브나 글을 보게 됩니다. 그건 쓰지 않지만 효능은 확실한 약 처방 같거든요. 그로잉맘은 기질을 분석하는 TCI 비대면 검사와 온라인 상담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육아맘들을 위한 회사’예요. 얼마전부터는 아이의 기질에 맞는 책, 성교육 키트 등을 판매하는데 그 기획이 눈에 쏙 들어옵니다.
이 모든 작업의 선두에 그로잉맘의 이다랑 대표(@growingmom)가 있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을 둔 엄마이자 심리상담가인 그녀는 무려 7년 전 이 사업을 구상하고 5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창업의 바다에 뛰어들었습니다. 경력 공백 육아맘들과 함께 일하며, 어디서든 일하는 곳이 일터고, 세 시에 퇴근을 해 아이 하원을 시키는 게 자연스런 문화를 만들었죠. 쉬웠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고 멈추지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가진 편견을 하나씩 격파하며 여기까지 온 건 ‘앞으로 우리 아이가 살 세상’엔 ‘괜찮아. 그럴 수 있지’라고 누구나 말하는 문화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꿈 때문입니다. 그건 자유롭고 주도적인 인생으로 가는 치트키니까요.
- 그로잉맘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알고 싶습니다.
심리 센터에서 아이들을 치료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다음에 센터에 올까?’ 또 놀이치료실에 있을 땐 ‘아이가 왜 이 정도로 아픈 다음에야 이곳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때 문제 의식이 생겼어요. 이렇게 곪을 대로 곪은 다음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게 된 건,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상담센터 시스템의 잘못일 수 있겠다는 거죠. 심리센터라는 곳의 문턱이 높아요. 심리적 압박도 상당하고요. 그래서 편하게 우리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문가와 부모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자고 맘 먹었죠. 그 다음 문제는 하나였죠. ‘어떻게 연결하지?’
- 개인적인 동기는 없었나요?
물론 개인적 동기도 있었죠. 저 역시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나로서도 존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거든요. 사실 심리상담사는 가정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요. 아이가 하원할 때 전 출근해야 했거든요. 상담은 하교 후에 이루어지니 어쩔 수 없어요. 아이를 돌볼 스케줄을 확보해야 했어요.
- TCI 기반 심리 상담을 하는 곳은 많아요. 그 와중에 그로잉맘이 육아맘으로부터 신뢰와 사랑을 얻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이해하기 쉬워서 라고 생각해요. 성격 심리는 되게 어려워요. 심리학에서도 매우 어려운 분야죠. 그걸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접근 했거든요. 두번째는 가족의 기질 조합을 총체적으로 분석하는 방식 때문이죠. 지금은 가족 모두를 분석하는 심리센터가 많이 생겼지만, 저희가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에선 생소한 개념이었어요. 마지막으론 기질 검사, 심리 상담으로 그치지 않고 다각도의 후속 작업을 이어가기 때문일 거예요. 각각의 기질을 바탕으로 ‘그림책은 뭘 사주면 좋은데? 놀이는 뭘 하면 좋지? 성교육은? ’ 이런 식으로 ‘너에게 맞는 걸 같이 고민하자’가 그로잉맘의 행동 양식이거든요.
- 맞아요. 기질 검사 결과를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분홍 다섯 가지 블럭으로 표현 한 건 정말 신박했어요. 이전에도 이런 컬러 블럭 기질 검사 결과가 존재했었나요?
아니오. 저희가 만든 거예요. 쉽게 기질을 설명하는 방식에 대해서 정말 오래 고민 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아이 레고 블럭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예요. 아이는 입체적이고 복합적이잖아요. ‘쟤는 너무 샤이해, 쟤는 너무 활발해.’ 그런 식으로 평면적으로 규정지을 수 없어요. 이런 개념을 설명하는데 레고 블럭은 정말 탁월했어요. 레고라는 것이 엄청 친숙한 소재이고, 그건 어찌 조합해도 틀린 게 아니고, 뭐든 복합적으로 변형할 수 있죠. TCI 기질 분석은 누구나 상담소에 가면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저는 생각했어요. ‘쉬워야 문화가 된다.’
- 대표님 개인의 기질 검사 결과가 궁금한데요?
전 모든 컬러가 모두 높아요. 대부분의 기질이 발달한 경우죠. 엄청 에너제틱하고 반면 불안도 높아요. 엄청 친화적이고 되게 감각적이고요. 정말 흔치 않은 경우죠. 하하.
- 우리 엄마들의 기질 검사와 심리 상담 데이터가 상당할텐데요, 우리 엄마들이 가진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었나요?
단연코 죄책감이죠. 대부분 엄마들의 기질 검사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요. 하지만 엄마들은 많은 경우 ‘내가 문제가 있어’ 라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어요. 그게 사실은 아이를 이해하고 인정하는데 문제가 되는 지점이에요.
- 왜 유독 우리 엄마들에게 그런 심리가 있을까요?
칭찬을 받지 못하고 자란 환경도 문제가 돼죠. ‘울어도 돼, 슬퍼도 돼, 약해도 돼, 천천히 해도 돼.’ 그런 말을 사회적으로, 부모에게도 들어본 적이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우리의 마음 속에 ‘나는 옳지 않다’라는 무의식이 깔려있을 수 있어요.
- 교육 시스템의 문제는 아닐까요?
전형적인 모성애 프레임의 문제이기도 해요. 조금만 다르게 대답하면 틀렸다고 하는 교육, 정형화된 교육이 엄마들을 옥죄고 있죠. 아직도 그렇잖아요. 초등학교 교실을 보면요.
- 아이를 키우며 그 정형화된 교육 시스템에 대한 고민을 남들보다 더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럼요. 지금 제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이에요. 입학 당시 고민이 꽤 됐어요. 아직도 초등학교에서 원하는 이상적인 아이에 대한 기준이 있잖아요. 활발하지만 지나치지는 않아야 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되 지키되 욕심을 부리면 안되고요. 그 기준에서 봤을 때 우리 아이는 열심히 하지 않는 아이처럼 보이는 스타일이거든요. 소극적이고 먼저 손들지 않고, 그런 기질의 친구 거든요. 그래서 고민했어요. 그 시스템 안에서 ‘그냥 너 답게 있어도 된다’고 말해도 될까? 하고요. 저 역시 아이 기질에 과연 맞는 걸 뭘까 매순간 고민하며 함께 커나가고 있어요.
- 기질에 따라 아이를 기른다는 게 생각보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교육 시스템을 일방적으로 따라가지 않는다는 뜻도 되나요?
많은 분들이 저는 선행도 영유도 다 반대할 것 같다고 말씀들 하세요. 하지만 저도 선행 시켜요. 그런데 그건 내 아이의 ‘기질’ 때문이에요. 자기가 전혀 모르는 내용을 수업 때 처음 만나면 당황해하고 불안해하거든요. 한스텝 정도 빠르게 집에서 미리 이야기를 나눠야 학교에서 자신감 있게 수업에 임하더라구요. 이렇게 아이의 기질에 따라 어떤 식의 교육을 할지 그 방식은 다 다르죠. 어떤 아이에겐 ‘친구에게 양보해’라고 가르쳐야 하고, 어떤 아이에겐 ‘네 것은 네가 지켜야해.’라고 가르쳐야 해요. 시스템과 환경의 문제에 앞서 아이 개개인의 기질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고 봐요.
- 기질이 왜 그렇게 중요할까요?
기질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는 건 바로 ‘관심’이니까요.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주려는 게 절대 아니에요. 아이가 본디 자극이나 환경에 대해 반응하는 양식을 관심을 가지고 알아채는 게 중요하지 그 기질을 언제까지나 수용하라는 게 아니에요. 아이의 특성을 알면 힘을 줘야 하는 부분과 느슨해도 되는 부분이 보여요. 그렇게 육아에 대한 목표가 명확해 질 수 있단 거에요.
그러면 아이의 자존감 영역이 잘 지켜져요. 자존감이란 자신을 존중하는 것이지만 자신의 좋은 점만 존중하는 건 아니에요. 부족한 점도 인정하는 수용성 역시도 자존감이죠.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는 자기 능력에 대한 확신 즉 효능감이 있어야 해요. 아이가 어디쯤 있는지 그 위치를 잘 파악하면서 부모가 같이 동행해야 자존감 형성이 가능하죠. 마지막으로 서로의 기질을 잘 파악해야 ‘양육자 중심적인 시선’을 가질 수 있어요. 즉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쓸데없는 죄책감을 버릴 수 있다는 거예요.
- 양육자 중심의 시선을 갖는다는 걸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예를 들어 친밀감이 엄청 높은 기질의 엄마는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스킨십을 하는 게 어렵지 않아요. 평생을 그렇게 살았거든요. 하지만 이 기질이 없는 엄마는 혼자만의 시간이 더 편해요. 그런 엄마들은 ‘남들은 괜찮다는데, 나는 아이랑 있는 게 왜이리 힘들지,’ 싶죠. 그래서 모성이 없는 것 같다며 죄책감에 시달려요. 하지만 분명 말 할 수 있는 건 그녀는 ‘그런 기질의 사람’인 거에요. 그런 경우 어린이집을 일찍부터 보내는 걸로 엄청 미안해 하죠. 하지만 그건 자신의 기질 상 아이와 더 잘 지내기 위한 방법이니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은 버려야 해요. 그게 바로 자기 인정이고 양육자 중심의 시선이죠.
- 평소 아이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뭘까요?
‘그럴 수 있어.’예요. 이건 감정에 대한 공감을 말해요. 행동의 공감과는 별개죠. 아이의 감정은 틀린 건 아니잖아요. 만일 공감이 백 프로 안 된다 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는 감정적 인정은 가능하니까요. 훈육도 감정 공감 이후의 일이라고 봐요.
- ‘그럴 수 있어’라는 말은 아이 기질과 상관없이 모든 엄마가 아이를 키울 때 적용해도 될까요?
네. 그 말은 모든 엄마들의 가슴에 새겨도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아이의 기질에 따라 그 사용 빈도가 달라야 겠죠.
- 아이를 키울 때 이거 하나만은 지키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하나만 알려주세요.
아이보다 빨라서는 안돼요. 이거 되게 지키기 어려운 거에요. 뭐든 잠깐만 기다려주면 돼요. 놀이를 할 때도 속으로 다섯만 세어보세요. 예를 들어 병원놀이를 할 때, ‘엄마 환자 할게’를 먼저 말하면 놀이가 규정돼 버려요. 훈육도 너무 빠르면 문제죠. 사춘기가 되면 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말이 ‘하려고 했어’ 거든요. 아이와 거리를 좁히려면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해요. 부모가 앞서지 않아야 공감이 생기죠. 정말 딱 다섯까지만 세어보세요. 이건 정말 실천할 만한 거라 생각해요.
- 그로잉맘에는 육아맘들이 많아요. 그래서 조직 문화도 특별할 것 같네요.
그로잉맘 초기엔 90%가 육아맘이었어요 지금은 70%정도고요. 그로잉맘에서 일하는 엄마들의 경우 전부 경력 보유 여성입니다. 이전 경력이 너무 화려한 분들이에요. 아이를 하원시키면서도 일을 하는 모습, 아무 거리낌 없이 둘째를 출산하러 들어갈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게 그로잉맘의 문화죠. 초기엔 저희 능력에 대해. 의심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일의 효율이 떨어지니 곧 문제가 생길 거라 여기는 이들도 많았죠. 그래서 더 확실하게 자리잡아 그 선입견을 깨야 했어요. 어떤 협업, 어떤 규칙, 어떤 보상과 리프레시가 있어야 이 조직을 잘 이끌 수 있을지 늘 고민합니다. 우리가 무조건 잘돼야 많은 기업이 따라올 수 있을 거란 생각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력 공백 육아맘의 재기에는 남들이 생각치 못한 어려움이 있겠죠.
한번 일을 쉬게 되면 이전 사이클을 회복하는데 두 배의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일 복귀 초기엔 자괴감이 크죠. 회사에 도움이 안되는 것 같다며 무너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설상가상으로 엄마가 일을 시작하면 아이는 일시적 퇴행을 보여요. 그러면 엄마는 정말 갈피를 잡기 힘들죠. 그래서 사내에 멘토 시스템을 두었어요. 누구나 다 그랬다는 걸 공감하면 이겨낼 수 있으니까요.
- 대표님의 경우는 어떠셨어요?
사실 전 과거에도 지금도 보조 양육자가 없어요. 진짜 방법이 없을 때 한두 시간 시댁에 아이를 맡기는 경우 외엔 말이죠. 아이 학교 보내면 바로 재택이든 출근이든 일을 시작하고 아이 돌아오면 그때부터는 잠시 일은 접고요. 그래서 점심을 제대로 먹은 적이 없어요. 점심은 제게 사치인 거죠. 그 시간 줄여서 집에 일찍 들어가야죠. 집에서도 노트북은 항상 켜져 있어요. 식탁이 제 오피스고요. 아이가 잠든 후 열 시 이후가 온전히 집중하는 또 한번의 작업 타임. 두시 정도 까지 일하고요. 그러다보니 번아웃이 오기도 했어요.
- 번아웃은 이제 어떻게 예방하나요?
완벽한 캠핑과 목욕과 잦은 실내 운동으로요. 힐링의 포인트는 사람마다 다른데 전 노트북과 휴대폰이 없으면 그게 힐링이더라고요.
- 그렇게 열심히 키운 그로잉맘의 청사진은요?
저는 심리 상담과 검사 같은 문화가 가볍고 대중적이었으면 해요. 이건 하루아침에 되는 건 아니에요. 우선 상담사들이 편하고 쉽게 일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해요. 수많은 자료를 데이터베이스화 해, 상담 비용을 낮춰서 고객 체험 허들이 낮아야죠. 반면 상담사 대우는 좋아야 하고요. 무엇보다 부모들의 일상에 상담이 있어야 해요. 예를 들어 아이의 책을 고르는 곳에 상담이 존재하는 겁니다. 커뮤니케이션, 쇼핑, 공부 영역 안에 상담이 자리하게 하는 게 목표죠. 그로잉맘은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는 건강한 브랜드와 함께 컨텐츠 커머스를 구축해서 ‘좋은 콘텐츠, 좋은 물건, 좋은 상담을 주자’의 방향을 향해 가고 있어요. 3월 15일 그랜드 오픈을 하는 저희 서비스가 그 시작입니다. 그로잉맘은 고객이 가장 신뢰하는 육아 플랫폼이 되고 싶어요.
- 창업의 꿈을 가진 엄마들에게 선배로서 조언을 해준다면요?
구제적인 안이 있다면 ‘그냥 해야’ 해요. 스타트업의 싸움은 브랜딩이죠. 창업 아이템은 다들 대동소이해요. 대신 창업하려는 사람이 뭘 만들고 뭘 가치로 삼는지를 일관되게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마치 육아관과 너무 흡사하죠? 반면 창업 안이 아직 구체적이지 않은데 돈도 없고 이래저래 생각만 많다면, 기록을 시작하세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로잉맘의 출발은 기록이에요. 전 그 기록 안에서 제 사업 아이디어와 의지가 반복되는 걸 알게 됐거든요. 운이 좋으면 좋으면 그 글을 좋아해주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죠.
- 마지막으로, 쑥쑥 자라 70대가 되면 어떤 할머니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지금처럼 가장 빠르게 무언가를 시도해보는 얼리어답터 할머니요. 세상과의 연결이 끊기지 않는 할머니이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