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이끈 제2의 커리어


어린이들의 세상인 5월에 우리 엄마들은 만감이 교차합니다.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 우리 아이. 아이의 나이만큼 우리 역시 쑥쑥 자라고 있는 거 맞죠? 어린이는 어른의 선생님이라더니, 그간 아이를 위해 살아온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봐요. 아이는 나의 숨은 에너지를 끌어올려 우리 엄마들의 미래 근육을 키워주고 있었던 거예요. 


여기 육아를 계기로 제2의 커리어를 만들어낸 사업가 엄마들의 진솔한 이야기가 있어요. 그간 스티커 인터뷰를 통해 마미님들께 건냈던 그녀들의 진솔한 경험담을 모아보았어요. 우리 그녀들의 이야기를 되돌려보아요.

스튜디오얀 대표 이지혜 (@oink_j)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가면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창업을 앞당겼어요”


출산과 동시에 13년 다닌 항공사를 그만두고 새 일을 시작하기까지 6년이 걸렸어요. 정확히는 아들이 여섯 살 가을이었어요. 이유는 딱 한 가지였죠. 여덟 살(초등학교 입학)이 아니었으니까요. 일을 시작해 볼까 한다는 저의 이야기를 듣고 지인이 했던 한마디가 생각나요. '너는 본디 생각이 많고 인터벌이 길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면 안된다. 어영부영 하다가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여덟 살이 되면 너는 지금 생각하는 그 일을 고등학교 졸업 이후로 미뤄야 할 것이다.' 여덟살 이후 육아를 하는 엄마는 안 바쁜 순간이 없다면서요. 아찔했어요. 


그래서 일단 무작정 시작했죠. 그리고 그때그때 닥치는 어려움을 정면돌파하고 있는데 정말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가고 있어요. 어떤 날은 정신이 없어 아들의 간식통과 물통을 씻지도 않은 채로 등원 시켜서 자괴감이 든 날도 있었죠. 입학 전에는 온갖 걱정들에 괜히 그 작은 등짝만 봐도 눈물이 고였었고요. 근데 아이는 제가 걱정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잘하더라고요. 저도 초반엔 썰물처럼 밀려오는 일과 육아, 가사 사이에서 허덕였는데, 그래도 지금은 처음보다는 아주 조금 노하우가 생긴 것 같아요. 아이도 저도 각자 성장해가고 있는 시기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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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2024.12



레디투킥 대표 양수현 (@areyou.readytokick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브랜드 못 낳고 키우겠나, 하는 용기가 생기더라고요”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는 미디어 스타트업 ‘뉴닉’에서 고슴이라는 캐릭터를 만들고, 브랜드 총괄 디자이너로 일을 했고 퇴사와 함께 ‘레디투킥’을 런칭했어요. 나의 브랜드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되었어요. 다만 어떤 브랜드를 만들어야 오래 재밌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이 길었죠. 출산을 하고 1년의 육아휴직 기간 동안 아이를 돌보며 폭풍 성장을 보며 뿌듯하기도 했지만, 그에 비해 나는 정체되는 것 같은 느낌에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지나고 보니 산후우울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다시 일터로 돌아갈 수 있을지 불안이 커졌고 커리어에 대해 고민이 깊어졌어요. 


남편과 엄마의 도움으로 일주일에 하루 육아에서 손을 떼고 나만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작업실을 구하고 #양수현로그인 이라는 해시태그도 만들고요. 매주 작업실에 나가 메모장을 펼치고 적고 또 적었어요. 지난 커리어를 회고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장단점을 나열하면서 앞으로 무엇을 하며 살아갈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졌어요. 그 질문에 답으로 ‘수영’이라는 키워드를 발견했어요.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들의 나이를 확인하니 적어도 10살이 넘었더라고요. 나도 더 이상 미루지 말고 하루빨리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수영이라면 나이 들어서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죠. 아이도 낳고 키워보니, 브랜드 못 낳고 못 키우겠나 하는 용기가 생기기도 했고요. 딸아이의 태명을 회사명으로 정하고, 아이 첫 생일에 사업자를 냈습니다. 사업자등록증을 볼 때마다 기분 좋은 책임감이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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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2023.03




커리어 액셀러레이터 김나이 (@naieekim

“엄마, 난 커서 회사원은 안 될 거야”라는 한마디에 회사원을 그만두게 되었어요”


전 증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현대카드와 JP모건 같은 곳을 거치면서 정말 치열하게 살았어요. 그러다 2014년쯤에 소위 말하는 '커리어 사춘기'가 심하게 오면서 회사를 그만두었고, 지금은 '커리어 액셀러레이터'라는 직업을 창조해 커리어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 금융권에서 일했을 때 남성중심적인 구조에, ‘오래 쉬면 내 자리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출산 휴가를 딱 3개월만 쓰고 복직했어요.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다 아이가 일곱 살쯤 되었을 때 커리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게 되었는데요, 어느 날 아이가 "엄마, 난 커서 회사원은 안 될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라서 이유를 물었더니, 제가 매일 집에 와서 입버릇처럼 "내일 회사 출근하기 싫다", "일하는 게 너무 힘들다"라고 했던 거예요. 그 사건이 제 커리어 변곡점이 되었어요. 나와 아이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아이에게는 ‘일과 회사’가 고통스러운 것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만 심어주고 있었던 거죠. 


결국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JP모건을 그만두고 지금의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저도 아이가 일곱 살 무렵 퇴사를 고민할 때 바로 답이 나온 게 아니었어요. 너무 막막해서 휴가를 내고 아이와 여행을 다녀왔거든요. 사실 그건 저를 위한 여행이었죠.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왜 나는 내가 있던 그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했을까?"라는 질문을 시작으로, "너는 진짜 어떻게 살고 싶어?", "네가 기여하고 싶은 일은 뭐야?" 같은 질문들을 저 자신에게 던졌죠. 아이의 한마디 덕분에 의식적으로 내가 있던 박스 바깥을 벗어나 보는 시간을 가진 것이 창직의 계기가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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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2026.03



비마이매직 대표 이현정 (@beemymagic)  

“제 브랜드의 시작은 제 딸에게 맞는 의식주를 챙기기 위한 거였어요”


비마이매직의 시작은 제 딸에게 편한 옷을 만들어주기 위해서였어요. 아이가 다리가 통통해서 일반적인 양말을 신으면 피가 안 통하길래 아이에게 편한 양말을 만들었고, 알러지가 심해 잘 때 몸을 긁는 아이를 위해 편한 올인원을 만들어 입혔어요. 비마이매직의 모든 것들은 제 딸로부터 비롯되었어요. 전 부모의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일은 아이의 의식주를 챙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외에는 제 자신이 더 중요해요. 한비가 너무 이쁘고 사랑스럽지만 제가 아이로 인해 무작정 희생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는 일을 할 때 방해받는 걸 싫어해요. 애도 이제 그걸 알아서, 제가 제 방에서 일할 때 들어오면 단호하게 ‘엄마 일하는 중이잖아’라고 얘기하죠. 꼭 그때 해결해야만 되는 일이 아니면 아이도 제 시간을 존중할 줄 알아야죠. 그 방식에 익숙해져서 서운함 없이 잘 받아 드려요. 자책과 서운함이 없는 관계를 추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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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2021.09





언커먼하우스 대표 정영은 (@uncommonhouse

“둘째를 낳고 집을 이사하면서 인테리어에 재능과 열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큰아이 출산 후 복직해 정신없이 1년을 근무하고 둘째 아이를 임신하며 다시 육아 휴직을 들어갔죠. 그즈음 처음으로 우리 명의의 집을 구했는데 내 집이다 보니 그동안 참아 왔던 집에 대한 열정을 다 풀어놓게 되었어요. 이런 과정에서 원하는 공간에 사는 즐거움과 집을 가꾸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지 깨달았어요. 집을 가꾸는 일, 더 나아가서 가구를 직접 디자인해서 제작하는 일을 진정 좋아한다는 걸 알게된 거죠. 그리곤 '더 늦기 전에 진정 좋아하는 일을 하며 아이들을 직접 돌볼 수 있는 일을 해보자!' 해서 언커먼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었죠. 큰 아이가 유독 저랑 떨어지는 걸 힘들어하기도 했고, 결정적으로 남편이 제가 가장 행복해질 수 있는 선택을 하라고 언커먼하우스의 시작을 적극 응원해주었거든요. 그래서 지금의 저와 언커먼하우스가 있는 것 같아요. 


아이가 있는 엄마가 (그것도 아이가 둘이나!) 안정적인 고연봉 직장을 자발적으로 벗어 던지고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는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경우와는 달라요. 게다가 출산 후부터는 실로 남편과 함께 우리 집의 공동 가장이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쉽지 않은 결정이었죠. 제 경험상 회사 생활이라는 게 연차가 오래될수록 그만두기 어려워 지는 것 같아요. 새로운 일을 시작해 볼 수 있는 적절한 나이에 진정 제가 하고 싶은 생긴 게  다행이고 감사하다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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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2020.12




아동심리학자 그로잉맘 이다랑 (@growingmom)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나로서도 존재하는 일을 찾고 싶었어요”


심리 센터에서 아이들을 치료하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왜 이렇게 부모와의 관계가 틀어질 대로 틀어진 다음에 센터에 올까?’ 또 놀이치료실에 있을 땐 ‘아이가 왜 이 정도로 아픈 다음에야 이곳을 찾았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때 문제 의식이 생겼어요. 이렇게 곪을대로 곪은 다음에 상담이나 치료를 받게 된 건, 당사자들의 문제가 아니라 상담센터 시스템의 잘못일 수 있겠다는 거죠. 심리센터라는 곳의 문턱이 높아요. 심리적 압박도 상당하고요. 그래서 편하게 우리를 찾아올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전문가와 부모를 연결하는 사람이 되자고 맘 먹었죠. 그 다음 문제는 하나였죠. ‘어떻게 연결하지?’ 


물론 창업엔 개인적인 이유도 컸어요. 내 아이에게 도움이 되고 나로서도 존재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싶었거든요. 사실 심리상담사는 가정을 지키기가 쉽지 않아요. 아이가 하원할 때 전 출근해야 했거든요. 상담은 하교 후에 이루어지니 어쩔 수 없어요. 아이를 돌볼 스케줄을 확보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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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202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