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의 제례 디자인

 

추석을 앞두고 차례상에 올릴 수만 가지(?) 음식 재료를 헤아려 봅니다. 아, 몸에서 피로 호르몬이 솟구치네요. 뭐가 문제인 걸까요? 제례의 본질, 제례의 심장이 대체 뭐길래? 


「예기」에서는 제사는  ‘생긴 근원’을 반추하는 거라고 해요. 그리고 그 이유는 ‘자기 자신을 낳아 준 사람을 잊지 못해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기원전부터 인간은 낳아 준 사람을 못 잊어 일 년 중 다만 며칠이라도 먼저 간 그들을 추억하고 감사하는 날을 정해 놓았다는 거예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다 보니 낳아준 이를 추억하는 본질보다는 ‘형식’이 뼈대를 이루게 된 것이고요.


전통을 제대로 알고 내 식대로 계승하리

제사가 인간의 본성이 만들어낸 사랑 의식이라면 고루한 전통 계승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도 좋겠지요. 그런데 어떻게 벗어나요? 전 그 해답을 찾은 적이 있어요. 그걸 오늘 마미님들과 공유해 볼게요. 2018년 가을이었어요. 딱 요맘때였죠. 현대적인 제례 스타일을 제시하는 전시가 있었거든요. 


재단법인 아름지기의 기획전 「가가례:집집마다 다른 제례의 풍경」. 같은 고민에 빠진 이 땅의 자손들이 참 많았나 봅니다. 이 전시를 보고 많이 기뻤습니다. 제가 제례를 준비할 때마다 ‘뭔가 억울’하던 그 감정의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고나 할까요? 이 전시는 ‘전통을 제대로 알고 창조적인 일상으로 계승한다’는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고 있었어요.  

전, 떡, 유과 같은 손 많이 가는 제물은 올리지 않던 퇴계 이황 선생의 ‘쏘 씸플’ 제사상. 대구포는 걸리적거리지 않게 둥글게 만 다음 상 중앙으로 옮겨 세팅했네요. 형식 파괴, 실용 만점. Ⓒ아름지기
전, 떡, 유과 같은 손 많이 가는 제물은 올리지 않던 퇴계 이황 선생의 ‘쏘 씸플’ 제사상. 대구포는 걸리적거리지 않게 둥글게 만 다음 상 중앙으로 옮겨 세팅했네요. 형식 파괴, 실용 만점. Ⓒ아름지기

이토록 심플했던  선조들의 제례상

전시 도입부는 전통 제사상의 재현이었어요. 중요한 건 이게 제가 알던 방식과 사뭇 달랐다는 겁니다. 제물 수가 적고, 지지거나 튀긴 음식도 없고, 홍동백서의 상식(?)도 무시. 제물 수가 35~40여 종에 이르고 각종 전에 유밀과 등 고운 것이 가득해야 한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희미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순간 낯설기까지 했죠. 아름지기에서 전통 제사상을 재현하며 택한 두 주인공은 안동의 퇴계 이황 선생 종가 제사상과, 충남의 명재 윤증 기제사상이었는데요. 이황 선생은 기름에 튀긴 과자는 호사스러우니 제사상에 올리지 말라 유언했고 명재 윤증 선생은 여기에 더해 전과 손이 많이 가는 떡까지 올리지 말라 하셨대요.  그러니 우리가 생각하는 제사상과 다를 수밖에요. 검박하고 심플해요. 


그뿐만 아니라 놀랍게도 실용적인 세팅법을 발견했지 뭐예요! 이황 선생 종가 상에 둥글게 휜 대구포가 중앙에 턱하니 자리했더라고요(위 사진 중앙). 뻣뻣하게 말린 대구를 상 끄트머리에 두니 치맛자락에 걸려 불편했기 때문이래요. 그래서 대구 몸통을 둥글게 말아 상 가운데로 ‘턱하니’ 옮긴 거죠. 형식보다 실용을 택한, 현명한 우리 선조님들!

도예 그릇, 일상 테이블 등을 활용해

뷔페 형으로 차린 취향 맞춤 제례 상차림 

Ⓒ아름지기

뷔페 형으로 차린 뉴 제례 디자인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상차림 제안. 세 가지 측면에서 감동적이었습니다..


첫째, 돌아가신 ‘그분’의 취향에 맞춰졌다는 사실. 거룩한 병풍도, 근엄한 옻칠 제사상도 없어요. 평소 좋아하던 그릇, 그분이 평소 사용하던 가구를 그대로 활용한 ‘그분’ 스타일  상차림. 그래서 가족 간의 추억 기리기라는 본질에 충실했어요. 다정하고 온화했죠.


둘째, 심플한 메뉴 구성이라는 점. 특히 인상적인 것은 제수 음식을 통 크게 분류한 ‘큰손 세팅법’이었어요’. 제수 음식이 밥과 국을 제외하고 육류, 어패류, 나물류, 과일류, 떡류라는 데 착안해 다섯 개의 큰 그릇으로 제사상을 완성한 것이었죠. 늘 불평했지만 개선의 기미는 보이지 않던 ‘답답한 형식’에 산소통을 매단 느낌이랄까요. 


셋째, 뷔페 형식으로 차려 가족끼리 셀프로 나눠 먹을 수 있게 했다는 것. 제례를 지내고 나면 상을 물리고 백만 개의 그릇을 꺼내 상차림을 새로 하잖아요. 그리곤 이어지는 설거지 지옥. 그런데 이런 뷔페식 상차림은 일인용 덜음 그릇만 얹으면 되겠더라고요. 유레카. 



중요한 건 ‘우린 왜 제사를 지내는가?’에 대한 돌이킴일 거예요. ‘우리를 낳아 준 사람을 잊지 못해서’라는 선조의 뜻을 새겨 본다면! 가족이 모여 좋은 음식을 나누며 추억하는 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테니까요.  맞아요. 많이 이상적이죠. 저 역시 그때 받은 영감을 고스란히 제사상에 적용하진 못했어요. 하지만 우리의 인식이 변화하는 그 순간, 새로운 스타일의 제례는 이미 시작되는 거라고 믿어요. 


가족 간의 사랑은 삶을 지탱하는 씨실과 날실. 이런 선진적인 제례 디자인이 제사를 일 년에 몇 번 없는 소중한 날,아름다운 패밀리 스토리를  직조하기 위한 날로 만들어 주면 참 좋겠네요. 앞으로는 가가호호 서로 다른 추억으로 차려질 훈훈한 상차림의 세상이 되길 바라봅니다. 우리, 할 수 있잖아요. 아자.

‘그분’이 좋아하던 과일 안주와 와인, 흐드러진 꽃으로 장식한 제사상. 모던한 촛대는 킥. 제가 생각해본 뉴 스타일 제례 디자인, 어때요?
‘그분’이 좋아하던 과일 안주와 와인, 흐드러진 꽃으로 장식한 제사상. 모던한 촛대는 킥. 제가 생각해본 뉴 스타일 제례 디자인, 어때요?